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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시119:33~48)

by 멧풀다솜 2019.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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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서를 읽다보면, 지금의 개역개정이나 쉬운성경 보다는 처음 성경을 접했던 개역한글 성경이 더 와닿는 경우가 있다.

 

 초두효과라 해야하나?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꼴같잖게(?) 중학교 시절부터 한학에 빠져 사서오경을 읽고 그 뜻풀이를 읽어나가는 재미에 빠졌다가 예수님을 영접한 뒤는 성경을 탐구하는 재미(?)에 심취해 있었던 터라 한자어투의 개역한글이 오히려 더 와 닿았었다.

 

 그러다가 점차 NIV를 넘어 각종 영문판, 주석서, 배경주석에 심취하고 심지어 헬라어와 히브리어 성경까지 스트롱코드를 읽으며 즐거워하곤 했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꽤나 성경에 대한 깊은 탐구심이나 말씀에 대한 보다 깊은 세계로 빠져드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실상 나의 문제는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탐구심이 아닌 나의 "지적 호기심" 혹은 "지적 허영심"을 충족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말씀을 현실에 적용하고 실천하는데 몸부림치기 보다는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읽고 있다는 그 허영심이 작용하였던 것이 더 컸던 것이다.

 

 '말씀의 장'이라 불리우는 시편 119편의 시인은 이러한 부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경고하며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이 다가서려 몸부림친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려는 의지(33)와, 전심으로 지키겠다는 맹세(34), 말씀 그 자체를 즐거워하며(35), 그 어떤 탐욕이나 허탄한 것이 아닌 말씀 그 자체에 대한 경외심에(35~38) 자심이 서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말씀을 세우시길 간구하며(38),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는 것이다.(41)

 

 그리고 그것이 세상에서 자신을 훼방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이 되며(42),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끊임없이 지키고자 노력하는 삶이 오히려 자신에게 자유가 됨을 인지하고(43~45), 그래서 묵상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46~48)

 

 나는 무엇때문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가?

 여전히 나는 나의 지식을 채우고, 드러내고, 그로 인해 내가 꽤나 그럴듯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가 "앎에서 삶으로, 누림에서 섬김으로" 이다.

 이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가슴이 아닌 손발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 한해가 되어야겠다.

 

 일찌기 신영복 선생님은 머리좋은 것이 가슴 좋으니만 못하고, 가슴 좋은 것이 손발 좋은것만 못하다 하셨다. 이 구절은 대학시절 듣고 가슴이 얼마나 뜨거웠던지....그런데 누구나 가슴은 뜨거워질 수 있다. 그 뜨거운 가슴으로 한발을 내어딛는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아니다, 사실 어렵고 힘든게 아니고 게으른 것이었고, 가슴이 뜨겁다 착각한 것이었다.

 여전히 나는 입으로, 머리로만 살려 하고 있다.

 

 하나님,

 오늘 나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에 보다 집중하게 하시고, 말씀을 머리로 알고 이해하기 보다는 손과 발로 먼저 움직여서 깨닫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이제 삶으로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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