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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깨닫게 하사 살게하소서 (시119:129~144)

by 멧풀다솜 2019.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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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시인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씀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말씀을 사모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말씀을 삶 가운데서 경험하고 말씀이 주는 위로와 말씀 가운데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을까?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 나머지 입을 열고 헐떡인다는 표현을 사용한다.(131)

 시인이 경험한 말씀의 능력들은 시편 119편에 걸쳐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고, 그로 인해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할 수 있었다.


 우둔한 사람을 깨닫게 하며(130), 의롭고 성실하며(137~138), 순수하다(140).

 시인이 경험하고 간절히 사모하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의 속성은 또한 하나님의 속성이기도 하다. 시인은 말씀을 통해 깨달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성실하심, 순수함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132), 죄에서 떠나고(133), 박해에서 구원받으며(134), 환난과 우환중에도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고(143), 살게하셨다(144).


 차라리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좋겠다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평안하겠다 느껴지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한 최악의 순간에 견딜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공허한 위로는 결코 위로가 되지 못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족을 생각해라,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희망이 있다 등과 같은 위로는 맞는 말이지만 위로가 되지 못한다. 지금 당장 죽음이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오는 이에게 그러한 위로들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최악의 환란 가운데서 매번 성실하고 의로우심으로, 자비하심으로 구하시고, 살게하시고, 기쁨을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은 그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된다.


 말씀을 깨달아 살게 해 달라는 시인의 고백은 그래서 처절하고 아름답다.

 '말씀을 깨달아 알게 하소서'가 아닌 살게하소서. 살게하소서...


 말씀은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다. 경험하여 살아내는 것이며 살아가는 것이다.

 말씀을 깨달아 알려 하니 말씀이 힘을 내지 못하고, 삶을 이끌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이 주는 위로, 격려, 구원, 힘을 경험하고, 그 말씀들이 나를 살게 하고, 오늘을 버티는 힘이 되도록, 말씀을 깨달아 살도록, 그렇게 기도하며, 구하며,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즐거움을 시인과 같이 노래하고 찬양할 수 있도록, 말씀의 끈을 놓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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