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멧풀다솜 2016. 4. 27.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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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던 영화 '동주'

IPTV의 VOD로 올라오고 나서야 보게 되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시절부터 장난스레 끄적이던 시.

그러다가 중학교 올라가서 계단 벽에 커다랗게 붙어있던 동주의 '서시'를 읽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그 짧은 시가 어찌 그리 아프고 쓰리던지,

중학교 1학년의 어린 나이에 그 시의 깊이를 어찌 알고 그리 가슴이 아프던지...

 

그 뒤 윤동주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찾아 읽었다.

읽을수록 동주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읽을수록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그리고 기억속에 동주가 희미해져 갈 무렵, 다시 동주를 영화로 만났다.

 

세상을 사랑하여 변화시키려던 사촌이자 절친인 몽규는,

동주의 시를 사랑하고 동주를 사랑했다.

영화속 장면 장면 나타나는 펜촉의 서걱거림은

중학교 시절 그 소리가 너무 좋아 펜촉에 잉크를 찍어 시를 쓰고 일기를 쓰던 내 모습이 떠 올랐고,

만년필을 들어 기차 안에서 시를 적는 동주의 모습에서

잉크병을 들고다니지 못해 큰맘먹고 구입했던 만녀필을 들고 좋아하던 중학생의 나를 만났다.

 

자신의 길을 가면서도 동주에게 계속 시를 쓰라 권유하는 몽규의 모습에서,

내 시를 읽어주고 좋아해주던 절친의 미소가 떠올랐고,

교토제대에 낙방하여 씁쓸해 하는 동주의 모습에서 번번이 대학입시에서 좌절하던 나를 만났다.

 

영화를 보며 감히 동주와 나를 비교하고 감정이입하는 부끄러운 내 모습을 보며,

잊혀진 줄 알았던 동주를 향한 깊은 애정이 아직 나에게 남아 있음을 느끼고,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영화를 보며 다시금 시를 써 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동주는 시가 쉽게 써졌다는데

나는 힘들게 시가 아닌 시를 쓰고 있는게 힘들어

끄적거렸던 1990년 어느날의 습작노트를 꺼내 읽어보고 만다.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중략>...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시가 아닌 시

 

시가 써지지 않는다

 

밖에는 올 봄 들어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봄비가 내리고

 

이 비가 그치면

맑은 하늘이 나올 터이고

시원한 바람,

씻겨진 잎사귀

 

이 많은 시들을 만나며

어느 하나도 시로 옮길 수 없다.

 

상투적이고 일반적인 나의 감상

그 감상을 늘어놓기만 할 뿐

 

내 시는 시가 아니다.

난 시를 쓰고 싶어 시를 쓰지만

역시나 나의 시는 시가 아니다

 

(1990.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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