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귀신을 내쫓으심
(막 5:1~20)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거라사 지방으로 오신 예수님.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많은 귀신들로 인해 아무도 이 사람을 감당할 수 없어 마을을 벗어나 무덤들 사이에서 지내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가 예수님을 보자 급히 달려와 엎드려 절하였다.
예수님이 귀신을 명하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말씀하시자 귀신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청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저와 무슨 상관이 있어 저를 괴롭히려고 하십니까? 저를 괴롭히지 말아주십시오"
예수님이 이름이 무엇이냐 묻자 귀신은 "레기온(군대)"이라 답하였다.
이 사람에게 들어간 귀신은 그 이름에 걸맞게 그 수가 많은 귀신이었다.
귀신은 근처에 있던 돼지떼를 보고는 그곳에 들어가도록 해 달라 요청하였고, 예수님은 그 요청을 들어주셨다.
그러자 2,000 마리나 돼던 돼지떼가 귀신이 들려 바다를 향해 돌진해 몰사하였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마을로 달아났고,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이 귀신을 내어쫓으신 일과, 귀신들렸던 사람이 온전해 진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예수님께 그 마을을 떠나 달라 요청하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 두려움은 예수님의 권위나 능력이 아니라 재산의 손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한 사람의 정신이 온전해진 것 보다는 2,000 마리의 돼지를 잃은 손해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얼핏 마을 사람들이 이상해 보일 수 있겠으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귀신이 들려서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던 사람이었고, 누구도 그 사람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무덤 사이에 지내게 되었으나 아마도 사람들은 그 근처에 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과 자신들의 재산인 돼지 2,000 마리를 비교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옳은 선택은 많은 재산보다 한 사람의 구원이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자신에게 대입해 본다면 나는 기꺼이 돼지 2,000 마리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현재 돼지 시세는 변동폭이 크긴 해도 성돈110kg 기준 대략 30만원 선이다. 싸게 20만원이라고 쳐도 4억이라는 거금이다.
아니, 돼지 한마리를 만원이라는 말도 안돼는 가격으로 계산한다 하여도 2,000만원이다.
4억~7억 정도의 재산을 손해보는 것과, 마을 입구 무덤가 사이에 귀신들려 사는 한 사람을 비교하면?
성경을 볼 때 나에게 적용해 봐야 할 것을 남에게 적용하고, 남에게 적용해야 할 것을 나에게 적용할 때가 있다.
돼지떼를 죽게 만든 예수님을 쫓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에게 적용해 보아야 한다. 그럼 쉽게 그 사람들을 어리석다 판단하지 못한다.
그러나 또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돼지 2,000 마리 보다는 한 사람의 영혼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아이들을 아직 만나지 못해 답답하다.
아이들 만나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이런 저런생각들을 하다보니, 아이들 한명 한명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또 고민하게된다.
내 몸이 편한 방법, 내가 손해를 덜 보는 방법보다는 아이들이 좋은 방법, 아이들에게 유익이 되는 방법들을 찾아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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