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자들과 게네사렛 지방에서 많은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가르치실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흠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의 눈에 예수님의 제자 중 몇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것을 발견하였다. (막7:1~2)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장로의 유전(파라도시스)' 이라고 불리는 '미쉬나'를 중시하였다. 원래 미쉬나는 율법(토라)을 더욱 잘 지키고,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유대인의 전통적인 규범에 과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대인들에게 있어 미쉬나는 율법보다 선행되어지고 더욱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갔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미쉬나'를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경건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예수님께 질문을 던진다.
어째서 당신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변과 더불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가식적인 민낯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자기 부모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다.
그런데 너희는 부모에게 응당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라고 말만 하면 부모에게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너희가 전통을 핑계 삼아 하나님의 율법을 없애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이런 너희들에 대해 이사야가 아주 잘 예언하였다. 이사야가 말하길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했느니라.
모든 율법에 앞서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계명으로 인식하는 십계명. 그 십계명을 인용하여 예수님은 장로들의 유전이 미쉬나가 오히려 가장 중요한 율법인 십계명 중 하나를 범하도록 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시며, 하나님의 율법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든 전통과 규범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며 경건한 척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위선을 드러내신 것이다.
교회에도 이런 미쉬나가 존재한다. 교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는 강대상에 함부로 올라서면 안 된다든지, 예배 시간에는 오직 찬송가만 부를 수 있다던지 하는 전혀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다양한 규칙들이 존재했고, 그것을 어기는 것을 큰일 나는 것처럼 말하기도 하였다.
사실 장로들과 유대인의 전통인 미쉬나가 나쁜 것은 아니다. 애초에 미쉬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보다 쉽게 구체화하여 잘 지킬 수 있도록 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율법에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내용은 율법에 없으나, 율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낸 하나의 '세부규칙' 또는 '시행령'과 같은 것이 미쉬나이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이 미쉬나는 율법을 보다 명확하고 잘 따르도록 설계되었으나, 점차 율법보다 우선시 되고 경우에 따라 율법과 반대되는 내용이 나타나면서 변질이 된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정결'에 관해 잘 못 이해하고 그저 씻는 행위로 정결을 드러내려 한 점을 비판하신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정결한답시고 음식을 먹기 전 손과 그릇을 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이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것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17~20절)
사실 미쉬나 같은 것들은 어떤 면에서 따르기 쉽다. 이런 이런 행동을 하면, 이런 이런 말들을 하면 거룩한 것이고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얼마나 쉬운가?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어떤 행위와 말을 했느냐 보다는 그 행동과 말이 어떤 마음에서 나왔는가를 보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은 단순해 보이면서도 무척 어렵기만 하다.
오늘 내가 고집하고 있는, 하나님을 헛되이 섬기고 있는 나의 미쉬나는 무엇인지 점검해 보고 하나님을 헛되이 섬기지 않도록 기도하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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