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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육/교과학습

[5-2 사회] 1-3-4 임진왜란을 어떻게 이겨 냈을까요 (하)

by 멧풀다솜 2025.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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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2학기 사회]

1. 옛 사람들의 삶과 문화

1.3. 민족 문화를 지켜나간 조선

1.3.4 임진왜란을 어떻게 이겨 냈을까요? (하)

https://youtu.be/HxV_N1r8B0c

 

 

⚔️ 임진왜란(상) – 조선은 어떻게 위기를 이겨냈을까? (한산도 대첩의 승리 비결)

1. 임진왜란 발발 직전, 조선과 일본의 상황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조선은 200년간 큰 전쟁 없는 평화 시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태평성대처럼 보였던 조선 내부에서는 붕당정치의 대립이 극심했습니다.

  • 조선의 내부 갈등 (붕당정치): 태조 때부터 이어진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은 동인(퇴계 이황 중심)과 서인(율곡 이이 중심)으로 나뉘어 극심해졌습니다. 당파 싸움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명종실록에는 "이 때문에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라고 기록될 정도였습니다.
  • 일본의 급성장: 반면 일본은 소위 전국시대라 불리던 혼란기를 거치며 무력이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뒤, 복속시킨 지방 영주들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조선 침략, 즉 전쟁을 계획하게 됩니다. 일본은 개량된 조총과 이를 활용한 전법 발달로 아시아 최강의 육군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2. 전쟁을 둘러싼 조정의 오판과 느슨한 대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 서찰을 보내 "명나라를 정벌하러 갈 테니 길을 빌려 달라"는 **'정명가도(征明假道)'**를 내세웁니다 .

이에 조선은 황윤길(서인)과 김성일(동인)을 일본에 파견해 실상을 알아보았으나, 당파에 따라 의견이 달랐습니다.

  • 황윤길(서인): 일본의 군사력이 강하니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
  • 김성일(동인): 전쟁의 정황이 없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

결국 유성룡 등은 김성일의 편을 들면서 조정은 전쟁에 대한 대비를 느슨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

3. 전쟁의 발발과 초기 위기

1592년, 왜군은 20만 군대를 이끌고 부산으로 상륙하며 임진왜란이 시작됩니다.

  • 조선의 위기: 왜군은 예상보다 빠르게 충주에 도달하는 등 파죽지세로 북진했고, 당황한 선조는 경복궁을 버리고 의주로 급히 피난하게 됩니다.
  • 분조와 의병의 봉기: 외군이 한양을 점령하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조선의 백성들은 끝까지 저항하며 전국 각지에서 의병을 조직해 대항했습니다. 선조는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조정을 분담하는 **'분조(分朝)'**를 시행하며 전국적인 반격을 촉구했습니다.

4. 바다의 영웅, 이순신 장군과 한산도 대첩

육지에서의 초기 연패에도 불구하고,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전라 좌수영 수군이 연전연승을 거두며 남해의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왜군이 육로와 해로를 동시에 이용하려던 수륙병진 작전은 이순신 장군에 의해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이순신 함대는 공식 기록만으로 17전 전승을 거두는 놀라운 전과를 올렸습니다. 특히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한산도 대첩은 전쟁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전투였습니다.

🚢 한산도 대첩 (임진왜란 3대 대첩)

  • 조선 수군의 주력 함선, 판옥선:
    • 조선 수군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은 바닥면이 평평한 평저선이었습니다.
    • 속도는 느렸지만 구조적으로 안정적이고 방향 전환이 쉬우며, 모든 방향에 포를 설치하여 화력을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 전략의 승리, 학익진(鶴翼陣):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은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73척의 전함으로 출정했습니다.
    • 이순신은 55척의 판옥선과 거북선 3척을 포함한 3도 연합 수군을 이끌고 와키자카의 '도선 후 백병전' 전략에 맞섰습니다.
    • 이순신은 견내량에서 적을 유인한 뒤, 넓은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어 조선의 판옥선들을 일사불란하게 학익진(鶴翼陣) 형태로 펼쳐 적 함대를 포위했습니다.
    • 포위된 상태에서 사정거리를 조절한 한포 사격과 거북선 3척이 본진 한가운데를 파고들어 사방으로 포를 쏘아대자 왜군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 압도적인 결과

구분 조선 수군 (이순신) 왜군 (와키자카)
전선 파손 0척 47척
전사자 3명 약 4,000여 명

조선 수군은 완벽하고도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 승리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수군에게 **"이순신 함대를 만나면 교전하지 말고 피해라"**고 명령했을 정도로 바다의 제해권은 완전히 조선의 것이 되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임진왜란 두 번째 편에서는 이순신의 활약 이후 육지에서의 반격과 전쟁의 종결까지를 다룰 예정입니다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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