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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마12:38~50)

by 멧풀다솜 2023.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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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부정하고 보다 확실한 증거-기적 같은 것들을 보여달라 요청하였다. (막8:11~12)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귀신을 쫓아내고 장님을 눈 뜨게 하고, 절름발이가 뛰어다니게 되었다. 더 이상 무슨 기적이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바리새인들이 요구하는 기적은 기적이 아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아니라는 자신들이 내린 결론에 대한 확증이 필요할 뿐이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악하고 음란한 세대" 가 표적을 구하지만 예수님이 보여주실 표적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 말씀하신다. 음란한 세대라는 말은 구약의 예언자들의 선포에 종종 사용되는 개념과 표상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역하는 것을 나타낸다. (사1:4,21 ; 렘3:8~9 ; 호2:2~5)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무덤에서 사흘 후에 부활하리란 암시를 나타내고 있다.(40절)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요나의 표적'에 대해 요나가 회개를 촉구했던 니느웨를 언급하신다. 최후 심판의 날에 니느웨 백성들이 일어나서 지금의 세대-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배척하는 세대를 정죄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수많은 표적과 이적, 예언의 성취를 눈으로 목격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다.

 

 요나는 니느웨가 회개하여 구원을 받게 될 것을 싫어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과는 반대되는 길로 도망하였으나 결국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내며 회개한 뒤 니느웨에 도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어쩔 수 없이 니느웨에서 회개를 촉구하였으나 3일 길에 해당하는 성에서 고작 하룻길만을 외쳤다. (욘3:3~4) 하지만 그 결과 니느웨 모든 백성은 회개를 하였고 그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

 

 예수님은 솔로몬을 찾아왔던 시바 여왕의 일화를 언급하신다. 시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소문으로 듣고는 직접 확인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에 와서 솔로몬을 시험했다가 그 지혜에 감탄하고 돌아갔다. 지혜를 얻기 위해 먼 타국에서도 오는 시바여왕도 있었는데 정작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해 경고하고 계시는 것이다.

 

 니느웨와 시바 여왕은 모두 '이방인'이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말한 '음란한 세대'는 이방인이었으나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지칭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을 '음란한 세대'로 규정하시고, 회개의 열매를 맺은 니느웨나 지혜의 말씀을 듣기 위해 먼 길을 온 시바여왕이 '지혜의 세대'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향해 더욱 강력하게 말씀하신다. 더러운 귀신을 기껏 내쫓아서 깨끗하게 만들었더니 나갔던 귀신이 다시 와서 보고는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서 귀신 들린 사람의 형편을 이전보다 더 나쁘게 만들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은 유대인을 말씀하심이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귀신을 쫓아내셨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기껏 깨끗하게 해 두었더니 그 상태 그대로만 있으면 결국은 더러운 귀신들이 다시 들어와서 더 더럽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것을 막는 유일한 길은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깨끗한 영-예수님으로 채우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논쟁에서 할 말을 잃은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을 둘러싼 무리 가운데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있는 것이 보였다.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 주장하지만 결국은 그 어미와 가족들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말한다.

선생님, 잠시 여기를 좀 보세요. 선생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말은 공손하였으나 그 말속에는 주변에 있는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선지자처럼 보이고 메시아처럼 보이는 저 사람-예수님도 결국은 보잘것없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의외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봐라! 내 어머니와 형제들이 여기에 있다! 누구라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자매이며, 어머니이다.

 

 하루하루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살아간다. 마치 광야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으면서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런데 이게 반복되다 보니 너무 당연한 듯 여겨지고, 더 큰 욕심이 꿈틀거린다. 아침에 만나를 거두었음에도 또 거두러 나가고 싶고, 메추라기 대신 소고기가 먹고 싶고... 하나님은 왜 '일용할 양식' 만을 허락하시는지...일용할 양식 말고 평생 양식 걱정 없이 살 순 없는 것인지...

 

 돌아보면 늘 언제나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다. 그러나 내 고집과 욕심은 눈앞에서 보여지는 예수님의 이적 말고 다른 더 신기한 것, 더 대단한 것들을 보여달라 요구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예수님은 오늘 말씀하신다. "무슨 표적을 더 보여줄까?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니? 감사는 어디 가고 또 우는 소리를 하고 있니?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으려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만 구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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