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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하나님의 뜻 (삼상 26:1~12)

by 멧풀다솜 2016.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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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다윗을 잡기 위해 십 광야 앞 하길라 산에 군사를 이끌고 와서 진을 쳤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정탐꾼을 보냈다.

과연 사울이 군사를 끌고 와 다윗을 잡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다윗은 그를 따르는 용맹하고 용기 있는 아비새와 함께 밤에 은밀히 사울 진영에 침투한다.

절호의 기회가 왔다.

사울 뿐 아니라 사울을 둘러싼 호위 무사들도 잠들어있다.

더구나 사울의 창은 사울의 머리 옆에 꽂혀있다.


아비새는 이를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찬스라 여겼다.

그래서 다윗에게 말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억울함을 아시고 그 원수를 갚게 하신날이 오늘입니다.

내가 사울을 죽이겠습니다.

두번 찌를 것도 없이 창을 한번만 내리 꽂으면 될 것입니다.

그랬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그들을 다 잠들게 하신 것이다 (12절)

이런 절호의 찬스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다윗은 이제 더이상 쫓기는 신세가 되지 않아도 된다.

이미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셨고, 사무엘을 통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셨다.

하나님을 위해, 이스라엘을 위해, 사울을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하고 싸움에 임한 다윗을 사울은 단지 질투만으로,

자신의 권력을 위해 죽이려 했다.

그 악행을 드디어 하나님이 갚을 기회를 주신 것이다.

아비새의 말은 백번 지당하다.


그런데 융통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다윗의 말은 가관이다.

답답하기 짝이 없다.

하나님이 주신 이런 절호의 기회를 보고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사울을 치실 것이다.

죽을 날이 되어 죽거나, 전쟁에서 죽거나, 사울이 어떻게 죽을진 하나님이 정하실 일이다.

하지만 내가 죽이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운 사람을 내가 어떻게 죽일 수 있겠느냐?

그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가자.

아이고 이 답답하고 앞뒤가 꽉막힌데다가 현실을 보지 못하는 인간아!

하나님이 사울을 죽이시려고, 너의 원수를 갚게 해 주시려고 군사들까지 잠재우셨다.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이 사울을 치시기를 바라는거냐 이 답답아 !


그렇다.

나는 사소한 원수조차도 갚을 기회가 생기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얼마나 쉽게 단정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려 하는가?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윗은 '상황'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리'에 주목한 것이다.

그것이 다윗을 앞뒤 꽉막힌 답답이로 만들었지만 다윗은 개의치 않았다.

아비새도 아마 다윗의 이런 성격을 익히 알았는지 더 권하지도 않고 그대로 따른다.


나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리 보다는 내 상황과 내 형편에 집중한다.

이것이 다윗과 나의 차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생각한다면,

정말로 내 삶에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려 하는 두려움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상황, 형편, 처지에 상관 없이,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 원리, 일하심을 믿고 따르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더욱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때론 답답하고, 융통성 없고, 앞뒤 꽉 막힌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하나님을 인식한다면, 의식한다면, 두려워한다면,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그렇게 내 삶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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