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육신의 아버지 요셉.
약혼하여 법적으로는 부부이지만, 유대 전통에 따라 마리아는 약혼 후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친정에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역할과 의무에 대해 배우는 시기였다.
그런데 큰일이 났다. 마리아가 임신을 하였고, 이 사실을 약혼자인 요셉도 알게 되었다. 율법에 의하면 이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일이었다. 하지만 요셉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분노와 배신감이 몰려왔겠지만,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파혼하여 마리아를 지켜주고 싶었다.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천사가 직접 나타난 것도 아니고, 엄청난 환상가운데 하나님이 말씀하신것도 아니었다. 그저 꿈이었다. 약혼자의 임신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던 중 꾸게 된 꿈이었다. 하도 이 일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다 보니 꿈에서까지 나타났다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꿈이었다. 그 꿈에 약혼자 마리아를 데려오란다.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란다. 그리고 이름까지 예수라고 한다.
이 황당한 꿈을 요셉은 믿고 따른다.
그리고 나름의 방법으로 검증한다. 그 검증의 방법은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아들을 낳았고, 꿈에서 들은 바 대로 이름을 예수라 붙이게된다.
요셉의 이러한 믿음과 순종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그건 믿음이 아니라 고민이 깊은 나머지 약혼자를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꿈이라 말했을 것이다. 아무데나 함부로 하나님의 예언이니 말씀을 붙이는게 아니라며 묵직한 조언을 했을 것이다.
더구나 이름 자체도 특별한 이름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서 지어주신 이름이라는게 당시 요셉의 이름처럼 흔하고 흔한,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쉽게 붙일만한 이름이다. 헬라어로는 '예수' 이지만, 히브리어 발음으로는 '여호수아'다. 그 뜻도 굳이 천사가 알려주지 않아도 아는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뭔가 거창하고 특별한 이름이었다면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꿈을 통해 나타나신 것이다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라니, 예수라니.... 이 흔한 이름때문에 예수님은 종종 '요셉의 아들 예수', '나사렛 예수', '마리아의 아들 예수' 등으로 다른 수식어를 붙여야 구분이 될 지경이었다.
성경에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부른 것 치고 예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의 행적은 더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야곱의 아들 요셉처럼 꿈을 통해 마리아를 데려오고, 꿈을 통해 헤롯의 박해에서 피하고, 꿈을 통해 돌아온다. '신약의 꿈꾸는 자'라 부를만한다.
성경이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부른 근거는 마리아를 조용히 끊어내려는 시도였다. 자신의 억울함과 황당함, 분노와 배신감을 억누르고 마리아의 입장에서 일을 크게 만들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려는 시도가 의로움이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요셉은 아마도 말씀을 주의 깊게 묵상하는 삶을 살았던 듯 싶다. 단지 자신의 꿈만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 꿈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을만한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과 여러 상황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했을 것이다. 이것이 요셉의 의로움이다.
요셉은 또한 맹목적으로 믿지 않고 구체적인 순종과 검증을 한다. 마리아를 데려오되 동침하지 않음으로 말씀에 대한 구체적 순종을 보이며 또한 말씀에 대한 검증도 할 수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것은 착한 일을 행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다. 내 감정과 의지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여 묵상하고, 그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이 아닐런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 입장에서 크게 적용할 말씀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학생들 때문에, 학부모 때문에 속상하고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 많다. 하지만 그러한 내 감정보다는 학생의 입장에서, 학부모의 입장에서, 동료교사나 관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야겠다.
말씀을 놓지 않고,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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