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0편 부터 134편까지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공통으로 붙어있다.
예루살렘이나 예루살렘 가까운 곳에 살던 사람들이야 큰 어려움이 없겠지만, 각지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오는 순례자들의 여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요즘이야 많이 좋아졌지만 우리나라 설이나 추석에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인해 도로나 교통이 몸살을 앓는 것을 생각한다면, 걸어서 예루살렘으로 모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정이 결코 녹록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단지 사람이 많고, 길이 멀고, 험해서도 있지만 무엇보다 성전을 향하는 순례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이스라엘 주변의 다른 나라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국가와 민족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적들이 예루살렘을 향하는 순례자들을 호의적으로 대할리가 없다.
성전을 향하는 순례자는 그래서 환란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는 것 외에는 어디에 머물지라도 그것이 결코 자신에게 유익이 아니라 오히려 화가 된다고 고백하고 있다.(120:1~5)
순례자는 싸우고 싶지 않다. 순례자의 목적은 오직 하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기 위해 성전으로 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싸우기보다는 오히려 화평을 원하지만, 다른 이들은 이러한 순례자와 싸우려 하고, 성전을 향하는 발걸음을 방해한다. (120:6~7)
이러한 상황에서 순례자는 거룩한 시온산-성전을 바라보며(121:1) 자신을 도우실 분이 오직 하나님 뿐이심을 고백하며,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발걸음을 지키고 환란을 면하게 하며, 영혼을 지키신다 고백한다. (121:1~8)
환란과 위기, 고난의 상황에서 순례자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지혜롭게 대처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목적은 오직 성전에 올라가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나의 도움이 하나님께 있고, 나를 도와주실 분이 하나님 뿐이라고 고백한다면, 그 믿음과 고백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로 한걸음씩 내딛는 발걸음이 있어야 한다.
나는 나의 도움을 하나님이 아닌 나에게서 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주변의 다른 것에서 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요 능력이라 고백하면서 실제로 내 삶은 내 능력과 힘, 머리로 내 도움을 삼고있는 듯 하다.
그런데 참 안된다. 내가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해서인가? 아니면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나에 대한 불신과 회의감이 든다. 하지만 그것은 내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고 내 주변을 향하기 때문이다. 내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함께하는 순례자들을 바라보며 힘을 내어 오늘도 힘겨운 한걸음을 내딛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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