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복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마태복음은 로마의 지배 아래 놓여있던 이스라엘이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에도 여전히 로마를 무너뜨릴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상황에서 메시아의 예언(언약)은 이미 성취되었으며,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복음서의 첫번째 책이다.
마태는 이러한 예수님이 메시아이며 그리스도임을 나타내는 기록의 첫번째로 예수님의 족보를 나열하고 있다.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기 위해서 마태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14대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의 14대, 그리고 바벨론 포로부터 예수님까지의 14대를 나열하고 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모든 민족에게 복의 근원으로 삼은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이며 시조라 볼 수 있다.
다윗은 이스라엘 모든 왕들의 기준이며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윗의 행적은 곧 말씀과 다름 없는 의미를 가진다.
바벨론 포로기는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포로에서 구하셨으며, 앞으로도 여전히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라 예언하고 약속하신 역사이다.
아브라함부터 다윗,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기, 바벨론 포로기부터 예수님까지의 연속성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의 기록방식은 단순히 예수님의 족보를 나열함으로 예수님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역사가운데 하나님이 어떻게 간섭하시고,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어떻게 언약의 성취로 이어지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즉, 마태는 단순하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아니,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한다거나, 예수님의 여러 말씀과 이적들을 보여주고 이러한 능력들로 보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그리스도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통해 어떻게 언약이 이어지고 있는가를 통해 그리스도를 드러내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무속적이고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다.
그저 믿고, 기도하고, 기다리면 복을 받는 그런 종교적 믿음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역사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를 바라보며, 그로 확신을 얻어 하나님께로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믿는 믿음은 어떠한가?
지식적인, 역사적인 기록으로서의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것인가?
믿으면 구원받는다 하니 믿고 있는 것인가?
나는 정말 예수님을, 하나님을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그 하나님이 내 삶을 주관하시고, 내 삶의 흐름 가운데 일일이 간섭하시며, 하나님의 언약을 드러내고 계심을 분명하게 알고 확신하는가?
말씀을 묵상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것은 믿음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지식으로 알아지는 것이라면 공부를 할텐데....믿음은 지식을 더해야 하고, 기도를 더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삶으로 알아져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 구하게 되고, 믿음을 달라 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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