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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독사의 자식들 (마 3:1~17)

by 멧풀다솜 2019.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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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보다 약 6개월 먼저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듣고 태어난 세례요한. 요한은 출생도 예수님보다 먼저였지만 사역도 먼저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마태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따라 예수님의 길을 앞서 예비한 자로 기록하고 있다(3).


 세례요한은 요단강에서 천국을 선포하며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였다. 요한은 선지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낙타털을 옷으로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나실인의 모습으로 수염과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모습은 선지자 이사야의 모습을 연상케한다.


 그래서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외침을 듣고 요단강에 나와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다. 일반 백성들 뿐 아니라 당대의 석학이며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것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이라며 독설을 내뱉었다. 이것을 우리나라식으로 의역하게 되면 "개 쌍놈의 호로자식들"쯤 될 것이다. 허물을 벗는 뱀의 모습을 당시 유대인들은 새끼 뱀이 어미를 잡아 먹는 것으로 보았고,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뱀은 부모를 잡아먹는 사악하고 패륜적인 존재였다. 뿐만 아니라 태초의 범죄로 말미암아 뱀은 사단의 상징처럼 사용되어왔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던지는 요한의 이러한 독설은 그들이 말씀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그에 합당한 열매가 없었기 때문이다(8). 오히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 의롭다 여기던 사람들이었다(9). 그뿐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처럼 하나님 말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우월감에 사로잡혀있던 사람들이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왜 요한에게로 나왔을까?

 아마도 그들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서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길 즐겼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세례 요한의 소식은 흥미롭기도 했고, 괘씸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요한을 찾아가 혹시라도 율법에 위배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지적함으로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예수님에게도 종종 바리새인들이 찾아가 말씀을 가지고 토론하려 했던 그들이기에 충분히 유추 가능한 일이다.


 요한의 그래서 그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이라 외쳤고, 회개와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생각을 하지 말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소리치는 것이다.


 그 독사의 자식들, 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오늘의 나일수도 있다. 말씀을 통해 내 삶을 비추고 내 삶에서 믿음의 열매들을 맺기 보다는 내 지식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말씀을 통한 시선을 사람들이 아닌 나에게로 돌려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열매들이 맺히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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