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QT)

세례와 시험 (마 3:13~4:11)

by 멧풀다솜 2019. 1. 19.
728x90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로 나아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다.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오히려 자기가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찌 세례를 받으려 하시냐며 말리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에 합당하다 말씀하시고 세례를 받으신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엇일까?

 분명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만한분이 아니다. 오히려 요한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는 것이 마땅하며, 예수님 자신은 세례가 필요 없는 분이시다.

 하지만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요한의 사역을 인정하고 세워주셨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가 필요하고, 성령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심을 통해 앞으로의 세례는 물이 아닌 성령의 세례가 됨을 알려주셨다.


 예수님은 위계와 질서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임을 요한의 세례를 통해 보여주셨다. 참 믿음은 사람을 세우고, 하나님을 드러내며,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바리새인들의 믿음과 다를 것이 무엇일까? 세례요한 역시도 예수님이 흥하여야겠고, 자신은 망하여야 한다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믿음이 어렵다. 나를 철저하게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야 하는데 내 속의 죄성은 끊임없이 나를 드러내고 싶어한다. 태초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그 죄성이 쉴 새 없이 솟구쳐 오른다.


 세례를 받은 예수님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이 얼마나 놀랍고 멋진 일인가? 이제 예수님을 통해 무언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의 다음 행보는 성령에게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것이었다.


 무언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예배와 찬양, 기도, 말씀을 통해 은혜를 체험하고 나면 내 삶에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 같지만 오히려 삶은 더 힘겨워지기도 한다.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시련도 커지기 마련이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이 올라갈수록 난이도 역시 함께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


 무려 40일을 금식하신 예수님의 첫번째 시험은 빵이었다.

 단순히 먹을 것이 아니라 40일을 굶은 상태에서의 먹을 것이다. 사단의 유혹은 이렇듯 교묘하다. 가장 절실한 것. 가장 필요한 것. 그리고 그리 크지 않아 보이는 것. 이 유혹에서 이기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그깟 돌 한덩이 빵이 되게 하는 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예수님은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며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다(신 8:3).

 그런데 나는 자꾸 빵을 원한다. 돈을 원하고, 풍족하진 않더라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그저 빵 정도의 물질을 원한다. 말씀으로만 살고 싶다 말하고 싶은데 실상 내 마음은 그렇지 않다. 나는 이미 첫번째 시험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빵이 통하지 않자 사단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잡아 줄 것이란 시편 말씀을 인용한다(시 91:11~12). 참으로 고약한 시험이 아닐 수 없다. 말씀으로 빵을 물리친 예수님 앞에 이젠 말씀에 의지해서 뛰어내리라고 말하는 사단의 유혹은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 말씀에 이렇다고 하셨다. 이런 말들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해야 할 말인지 본문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말씀을 이용하여 헌금을 강요하거나, 성 소수자를 핍박하고, 어려움에 처한 나그네를 핍박하고, 땅밟기를 한답시고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남선교회 이름을 아론과 훌이라고 붙이며 모세의 양팔을 붙드는 것 처럼 목회자를 섬겨야 한다 말하며 스스로에게 모세의 권위를 붙이는 목회자들도 있다.


 어디 그들만의 이야기일까? 나도 다르지 않다. 묵상을 통해, PBS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보다는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이 있지 않던가? 내 좋을대로 말씀을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지 않았던가? 말씀묵상이 중요한 만큼 적용 또한 조심스럽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와 분별력을 구하며 해야 할 일이다.


 시편을 인용한 사단에게 예수님은 신명기의 율법(신 6:16)으로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그러자 사단은 더 높은 곳으로 예수님을 데려가 자신에게 경배하면 천하 만국과 영광을 주겠다 말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에 대해 분명히 알고 계셨다. 그리고 그 길이 얼마나 험한 길인지도 아셨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태어나신 분이라니.... 그런 예수님의 마음에 사단은 그런 고난의 길 말고 영광의 길을 선택하라 말한다. 명예의 길을 선택하라 말한다. 편한 길을 선택하라 속삭인다.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한다 찬양도 하면서, 내게 어렵고 힘든 일은 해결되고 편안하고 명예로운, 영광스런 일들만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은 이미 사단의 세번째 시험도 통과하지 못하였다. 안락하고 명예로운 삶을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구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시길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 그닥 열심히 구하지도 않는다 ㅠㅠ


 예수님은 이번에도 신명기의 말씀(신 6:13)을 통해 거절하시고, 이에 사단은 떠나가고 천사가 나와 예수님의 수종을 든다.


 예수님의 이 세가지 시험. 물질(빵)과 그럴듯한 말씀을 통한 기적, 그리고 명예 중 내가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은 하나도 없는 듯 하다. 그나마 소망이 있음은 이것이 사단의 유혹임을 본문을 통해 알았고, 내 힘으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걸려 넘어지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함을 알았다고나 할까?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고, 말씀으로 살아갈 지침을 얻되, 말씀을 멋대로 해석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 깊게 말씀을 살피고 적용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구하며 살아가야겠다.



 

728x90

'묵상(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빛과 소금 (마 5:13~20)  (0) 2019.01.22
팔복 (마 5:1~12)  (0) 2019.01.21
독사의 자식들 (마 3:1~17)  (0) 2019.01.18
하나님의 계획 (마 2:13~23)  (0) 2019.01.17
동방의 박사들 (마 2:1~12)  (0) 2019.01.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