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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빛과 소금 (마 5:13~20)

by 멧풀다솜 2019.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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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많이 알려진 말씀. 세상의 빛과 소금.

 소금이 맛을 잃으면 그것을 무엇에 쓸까? 그저 길바닥에 버릴 뿐이다. 그런데 소금이 맛을 잃는다고? 소금은 유효기간이 없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의 특산품인 사해소금은 다른 소금에 비해 각종 미네랄의 함량과 염도가 굉장히 높다. 하지만 녹는 과정에서 주변의 알카리 성분을 얻게 되면 소금 고유의 맛이 사라지거나 약해지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것을 말씀하셨던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짜지 않은 소금은 별 쓸모가 없는 것은 확실하다.

 꽤 오래전 여행을 하다가 워낙에 냉면-특히나 물냉면을 좋아하는 나는 여름이었고, 덥기도 해서 냉면집에 들어가 좋아하는 물냉면을 시켰는데....미지근했다 ㅠㅠ 얼음도 동동 띄워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원하지도 않았고, 육수의 맛도 밍숭밍숭했다. 어지간해서는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는 습성에도 불구하고 반정도만 먹고 나와버렸다.


 냉면을 먹을땐 시원한 맛을 기대하고, 소금을 사용할 땐 짠맛을 기대한다. 나더러 세상의 소금이라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내게 소금으로서의 맛을 기대하고 계신다. 나더러 빛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그 빛을 높이 달아 어둠을 밝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 비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계신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6)


 오늘날의 기독교가 욕을 먹는 이유는, 세상이 기대하는 기독교인의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승려가 고기를 즐겨먹고 좋은 옷을 입으려 하면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땡중"이라 한다. 땡이다. 중이 아니란 말이다. 기독교인이 기독교인 답지 않을 때 사람들은 "개독"이라 욕한다. 개같은 기독인이란 말이다.


 문자적으로 종교는 '최고의 가르침'을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인에 대해 보다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에 미치지 않을 땐 욕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율법적 의로움에 있어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아야 한다 말씀하셨다(20). 적어도 율법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나 실천에 있어서는 바리새인급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선생님에게는 선생님이기 때문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보통의 사람들보과는 다른 도덕적 기준이 적용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꽤나 도덕적인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서는 멈추는 습관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그냥 건너는 짧은 길목에서도 혼자 미련하게 서서 기다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집 앞의 마트에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교통량도 거의 없는 짧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서 있다 보면, 하나 둘 사람들이 눈치를 보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냥 건너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건너면서도 민망해 하거나 괜히 신호등을 한번 쳐다보거나, 혹은 혼잣말처럼 "고장인가?"하며 건너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 길을 건널때 이런 내 행동습성을 보고는 '선생님인거 티내냐?' 라고 하거나, '역시 선생님은 선생님이구나'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별것 아닌 작은 행동이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에는 선생님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에 일치한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물론, 내가 다른 부분에서도 그러면야 참 좋겠지만 그저 길을 건너는 습관만 그렇다는 것이다. ^^;;


 내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아~ 역시 믿는 사람은 다르구나' 할 수 있을까?

 참으로 예수님은 힘든 삶을 요구하고 계신다. 오죽하면 '좁은 길'이라고 말하셨을까 ㅡ,.ㅡ

 군자(君子)는 대로행(大路行)인데....난 좁은 길 보다는 넓은 길이 좋은데 예수님은 그 길이 아니란다. 보다 엄격하고, 보다 까다로운 기준을 원하고 계신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말씀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지도 않고, 그런 사람들을 '율법주의자'라 비난하기도 하고, 넓은 길로 다니려 하고, 그러면서 빛과 소금은 되고 싶고. 참으로 고약한 인간이다. 나란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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