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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두려움 (마 8:23~34)

by 멧풀다솜 2019.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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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병고치심과 귀신들린자를 쫓으시는 이적을 본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오랫동안 갈망해 온 구세주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구세주는 가난을 해결해주고, 병을 고쳐주고,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구세주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에워싸였고, 결국 배를 이용하여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큰 풍랑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예수님은 배에서 주무시고 계시고, 어부로 잔뼈가 굵은 제자들은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보려 애썼다. 하지만 그들이 감당할 수준의 풍랑이 아니었다. 결국 예수님은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워 도움을 청한다.


 깨어나신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을 책망하신다. 제자들이 두려워하는 이유가 믿음이 적은 탓이라며 책망하시고는 바람과 바다를 꾸짖자 거짓말처럼 잠잠해진다. 이에 사람들은 도대체 예수님은 어떤 분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가 하고 놀라워한다.


 믿음이 적다니? 이건 믿음의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생존의 문제다. 예수님이야 당연히 요동치는 배 안에서도 평안히 주무실 수 있지만, 제자들은 아니다. 두렵다. 뱃사람으로 살아온 그들이기에 더 두렵다.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마땅히 두려워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가다라 지방에 도착하신 예수님의 앞에 이번에는 귀신들린 두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막아섰다. 그 지방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이다. 귀신이 들려 무덤 사이에서 지나며 몹시 사나워 사람들은 아예 그곳을 지나갈 생각조차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소리를 지른다. 예수님의 권세로 자신들이 쫓겨나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왕 쫓겨날거면 돼지떼에게 들어가도록 요청하고, 예수님이 허락하시자 군대귀신은 돼지떼로 들어갔고, 돼지떼는 갑자기 미쳐 날뛰며 바다로 들어가 몰사한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도망가서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사람들은 어찌된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예수님에게로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그들은 물에빠져 몰살한 돼지떼와 얼마전까지 심히 두려운 존재였던 귀신들린자가 멀쩡해진것을 본다.


 큰일났다. 예수님이 계속 계신다면 다른 귀신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또 어떤 가축이 피해를 당하게 될지 그들은 두려웠다. 당연하다. 그들의 생계수단인데....결국 그들은 다른 마을로 떠나시기를 예수님께 간구한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제자들의 두려움과 가다라지방 사람들의 두려움.

 그들의 두려움은 생존의 문제였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풍랑으로 인해 죽음의 위협을 느꼈고, 마을 사람들은 생계수단이 가축을 잃었고, 또 더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애초에 예수님이 풍랑이 일지 않도록 하셨으면 되었을 일이다. 풍랑이야 그렇다쳐도 군대귀신을 그냥 떠나가게 하셨으면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내가 죽게 생겼고, 당장 생계에 위협을 느끼게 생겼는데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다 되는것 아니었어?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평안할 수 있는거 아니야? 아니었다. 혹자는 풍랑가운데 평안히 잠드신 예수님을 보며 힘을 내라, 믿음을 가져라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 혹자는 저 귀신들린 사람이 멀쩡해진게 더 좋은일 아니냐고 말하겠지만 난 그렇지 않다. 귀신들린 사람이야 상종안하면 그만이지만 내 돼지떼는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두렵다.


 오늘 나의 두려움은 그런 두려움이다. 상황의 두려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두려움. 그 두려움 가운데 예수님만 보며 평안하기에는 내 두려움이 너무크고, 나에게 닥친 문제들이 너무 크다. 평안히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울 정신조차 없이 거센 풍랑이 휘감는다. 믿음따위 어찌되든 당장 어떻게든 내게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애쓴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경제적인 문제는 너무도 치명적이다. 만일 예수님이 함께 하심으로 내게 경제적 어려움이 닥쳐야 한다면 나도 예수님이 차라리 떠나시는게 좋겠다고 간청할 것이다. 천국의 소망은 멀고, 두려움은 당장 눈 앞에 있으니....


 말씀을 적용하려 할 때 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참 적용하기 싫다. 두렵다. 어떻게 적용해야 할 지 알겠는데 그래서 더 두렵다. 풍랑을 무서워하지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라, 눈 앞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보지 말고 천하보다 귀한 사람이 문제에서 벗어난 것을 보라.


 싫어요. 귀신들린 사람의 어려움 말고 내 어려움좀 살펴달라고요. 풍랑을 꾸짖지 말고 풍랑이 없는 곳으로 인도해 달라고요!


 성경은 그게 아니다. 믿음의 삶은 그렇게 만사형통한 삶이 아니라고 꾸준히 말해주지만, 나는 여전히 믿는다 말하면서 만사형통을 꿈꾼다. 내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내 믿음의 수준은 고작 이정도밖에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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