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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무엇을 위해서? (마 8:14~22)

by 멧풀다솜 2019.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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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신 예수님은 이번에는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신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병든자, 귀신들린 자를 예수님께로 데려온다. 예수님은 이를 마다하지 않고 모두 고쳐주신다.


 마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서 구약성경을 많이 인용하는 복음서다. 대략 60 여개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중 40여개는 직접 인용하기도 하였다.


 마태는 문둥병자를 고치고,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고, 베드로의 장모와 그 외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신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 이사야 53장을 떠올렸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산상수훈 직후의 이적들을 다루는 마태의 기록방식은 철저하게 예수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구약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행적이 선지자의 예언과 일치한다는 증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태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이 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어떻게든 예수님과 함께 있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언의 성취가 아닌 예수님이 베푸시는 기적에 매료된 사람들이고, 일부는 예수님의 독특하면서도 권위 있는 설교에 매료된 사람들이다.


 예수님 시대 서기관은 율법학자이며 선생들이다. 이 사람들은 포로귀환시대 에스라 이후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를 깊이 있게 연구하여 시대상황에 맞게 적용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쳐 온 사람들이며, 흔히 말하는 '랍비'의 전형이다.


 이러한 율법선생인 서기관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방식에 매료되지 않았을까?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파격적인 해석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해석과 힘 있는 말씀에 매료되어 사람들을 가르치는 지위의 자신이 스스로 예수님을 선생으로 삼아 배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우나 새도 자신의 거처가 있지만 예수님은 머리둘 곳 조차 없다고 말씀하신다. 어떤 제자는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오겠다고 하는데 죽은 사람이 죽은 사람의 장례식을 치르게 하라 말씀하신다. 천국의 소망이 없는 죽은자들이 생명을 다한 죽은 자들의 장례를 치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려는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많은 사람들, 심지어 서기관 조차 예수님을 따르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길이 결코 녹록치 않은 길이며 심지어 자신의 부친 장례식도 외면해야 할 만큼 고단하고 힘든 길임을 수차례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적, 병고치심 등에 매료되었으며, 가르침에 매료되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도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 아니 나도 이런 사람들과 다를게 없어보인다. 멋진 설교에 탄복하고, 마음에 드는 성경구절에 은혜(?)받고, 그런데 정작 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지 않은가? 난 무엇을 위해 예수님을 믿는가?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의 삶의 방식은 닯고 싶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다윗처럼 살고 싶다 말하지만 다윗처럼 아들에게 배신당하고 적국에서 미친척 하며 살아야 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사람이 낳은 자 중 이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셨던 그 세례요한의 삶은 더더욱 닮고 싶지 않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른다.....어이없는 아이러니다.


 무엇을 위해 예수를 믿는가?

 하나님의 영광? 아니면 나의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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