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으로
(느 2:1~20)
예루살렘이 갔다가 온 사람들로부터 예루살렘이 황폐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3~4개월 지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한 첫 행보를 시작한다.
왕의 앞에서 포도주를 따르는 느헤미야의 얼굴에 근심이 있는 것을 본 아닥사스다왕은 느헤미야가 병도 없는데 왜 얼굴이 그모양인가 묻는다. 느헤미야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짐짓 황망하게 놀라며 왕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느헤미야는 의도적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싶은 자신의 소망을 개인적인 문제로 이야기한다. 이는 앞선 포로귀환과 스룹바벨 성전건축으로 인해 서쪽 지역 관원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탄원하고 그 일로 인해 성전 공사가 중단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스 4:21~22)
따라서 느헤미야는 조상들의 무덤이 황폐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 때문에 마음에 슬픔이 있는 것이라 말한다. 당시 조상들의 무덤을 지키고 싶어하는 것은 가장 보편적인 윤리로 인식되었기에 왕과 왕후의 동정을 받기 좋은 핑계거리였다.
아닥사스다왕은 느헤미야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다녀올 것을 허락하기 위해 기간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묻고, 아마도 느헤미야는 그리 길지 않은 기한을 정한 듯 보여진다. 실제 느헤미야는 12년 정도를 유대 총독으로 지낸 뒤 페르시아로 돌아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8년 정도 총독 생활을 더 하게된다.
에스라와 달리 느헤미야는 왕의 지원을 받아 왕의 추천장, 호위병과 기병대를 얻어내고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다.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귀환은 당시 예루살렘 주변에 있던 다른 지방에는 큰 위협으로 느꼈고, 따라서 느헤미야의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으로 인해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느헤미야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3일동안 별일 없이 쉬었다가 극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밤에 은밀히 성벽을 돌아보기로 한다. 성벽을 둘러본 느헤미야는 아마 머리속에 재건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이 세워졌을 것이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제 유다 사람들과 제사장, 귀족과 관리들에게 자기가 어떻게 해서 예루살렘으로 왔고, 그 일을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셨는가를 이야기 함으로 예루살렘의 재건을 위한 용기를 일깨워준다.
느헤미야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힘을 내어 성벽을 건축하기로 마음 먹자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은 이를 페르시아에 대한 반역행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미 왕의 허락을 얻고 문서까지 받은 느헤미야는 단호하게 이들을 거부한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느헤미야의 행보를 보면,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준비하며, 계획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도하며 부르짖기만 하지도 않았고, 열심이 앞서 먼저 움직이지도 않았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매우 신중하면서도 철저하게 계획하에 움직였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이는 느헤미야의 모습을 보며 오늘날 하나님께 기도하며 일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이 미치기를 기도하지만,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열심을 내어 가르친다고 되는 것 역시 아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다.
아무리 열심을 내어 움직여 보았자 상황은 언제나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고 기도만 하고 있으면 모든 상황이 변하지는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밤낮으로 밭을 지켜도 홍수나 가뭄 한번이면 끝난다. 씨만 뿌려놓고 기도만 하고 있으면 씨앗은 금새 말라 죽어버린다.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물을 주고 비료를 주는 것은 내가 할 일이로되 그것을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된다.
내 힘만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뒤 다소 이른 시각에 출근해서 교실에 앉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말씀묵상과 기도이다. 하지만 그것도 몇년째가 되니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관성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열심히 수업준비도 해야 하고, 묵상과 기도도 습관적인 아닌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이제 곧 새학년이 시작된다.
늘 하던 아침 묵상과 기도는 쉬지 않되, 보다 열심을 내고, 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보다 더 열심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수업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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