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마 17:14~27)
변화산에서 초막을 짓고 머물고 싶었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산으로 내려온다. 그 사이 산 아래에서는 난리가 났다. 귀신들린 아이를 산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자들에게 데려 왔는데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아이의 부모는 산에서 내려온 예수님께 간청했다.
예수님은 이에 "이 믿음이 없고 뒤틀린 세대들 같으니....내가 언제까지 너희들과 함께 해야 하고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줘야 하냐? 아이를 데려와라" 제자들을 책망하시고는 귀신을 쫒아내셨다.
제자들은 따로 예수님께 나와 은근히 물었다.
"우리는 왜 안되었던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믿음이 적어서....겨자씨 한알 만큼의 작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산도 옮길 수 있다 말씀하신다.
믿음이 적어서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지만, 산을 옮길만한 믿음은 겨자씨 한알에 불과한 아주 작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신다. 겨자씨보다 작은 믿음은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는 스스로의 힘으로 하려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가복음 9장에서는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예수님께 묻자 예수님의 대답이 기도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대답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제자들은 열심히 예수님이 평소 귀신을 쫓아내시던대로 귀신을 호통치며 나가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셨던 모양을 흉내내는것으론 부족하다. 귀신을 쫓아내는 힘과 권세가 누구에게서 나오는가를 안다면 기도가 답이라는 예수님의 설명이 이해가 될 수 있다.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지만, 기도가 더해져야 하는 것이다.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기도만으로는 무엇도 되지 않는다. 기도는 믿음이다. 하나님이 하실 것이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그 믿음으로 산에게 명령하면 산도 옮길 수 있는 것이다.
가버나움에 도착했을 때 성전세금을 걷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성전세를 내지 않는가 묻자 베드로는 낸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조용히 예수님께 가서 물으려 했는데 예수님이 먼저 베드로에게 물으신다.
"임금이 세금을 백성에게 받느냐? 아니면 자식들에게 받느냐?" 당연히 임금은 세금을 백성에게 받는다 베드로는 대답하고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이시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지만 굳이 성전세 걷는 사람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하면 첫번째 건지는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꺼내 성전세를 내라 말씀하신다.
이번에도 역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은 한세겔을 주시지만 그냥은 안주신다. 낚시를 해야 하고, 낚시를 통해서 건진 물고기의 입을 벌려야 한다. 상식적으로 거기에 동전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믿는다면 물고기 입을 벌려 동전을 얻을 수 있다.
믿음의 원리는 단순하지만 어렵다. 말씀에 순종하면 된다. 단순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때로 말도 안되는 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보리떡 다섯개를 오천명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신다던지 세금을 내기 위해 물고기 입을 벌리라던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나, 믿음을 강조하는 로마서의 맥락은 그래서 다르지만 같은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믿음 없는 행함은 율법주의가 되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미신이 된다.
때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이라면, 의심 없이 따르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이 겨자씨 한알의 믿음이며 산을 옮기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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