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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성벽을 쌓다 (느 3:1~32)

by 멧풀다솜 2019.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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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쌓다

(느 3:1~32)


 성벽을 쌓은 사람들의 이름과 구간을 나열하고 있다. 예루살렘성전 훼파 이후 무너진 성벽은 다시 쌓을 이유가 없었지만, 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된 이후에도 방치되어 있는 성벽은 문제가 있었다.


 성전 주변의 성벽을 쌓음으로 외부와 분리되는 거룩한 신앙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상징이 성벽이다. 성벽을 쌓는 것은 단순히 경계벽을 세우는 의미를 넘어 신앙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가급적 모든 공동체가 함께 부담을 지도록 40여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분량을 나누었다. 뿐만 아니라 생활 근거지에서 가까운 곳을 맡도록 배분함으로 작업의 효율을 높이고 일하는 사람들의 부담을 최소화 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을 위한 일의 배분을 살펴보면서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원리를 보게 된다.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누구 한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지만, 또한 느헤미야와 같은 지혜를 가진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각자가 맡은 역할이 있고, 어느 한 부분이 소홀해 진다면 하나로 연결된 성벽이 완성될 수 없기에 각자가 맡은 부분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수도 없다.


 느헤미야는 가급적 골고루 작업을 배분하면서도 생활 근거지를 기반으로 작업구간을 나누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드고아 사람들도 작업에 참여하였으나 드고아 귀족들은 공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벽을 재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아니, 오히려 성벽 재건이 그닥 반갑지 않았다. 외부적인 방해요인 뿐 아니라 내부적 방해요인도 있었는데 내부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미 기득권을 가진 그들은 굳이 신앙공동체를 세우는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는 것 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상의 손실, 노동력의 손실을 계산했는지도 모른다.


 공동체 내에서 기득권이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의 반대는 치명적이다.

 그러나 느헤미야서는 이러한 내부적인 반대요소를 크게 다루지 않고 짤막한 한줄로 기록하고 있다. 그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그들은 어떤 반대를 했는지 기록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반대에 대해서는 부딪히지 않는 것이 최선책이다.

 내부 분열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적이다. 외부의 위험요소는 공동체를 단결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내부의 분열은 한순간에 공동체를 갈라놓는다. 불만을 가졌다고 해서 이 사람들을 내쫓았다면 공동체에는 작은 균열이 생겼을 것이고, 그 균열은 언젠가 터져 큰 금을 만들고 공동체를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만을 가진 사람들조차 수용하고, 각자가 자신의 할 일을 다할 때, 불만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그렇다고 그들을 쫓아내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 굳이 싸울 이유도, 설득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학교에서 가급적 학급의 모든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내 방침에 따라와주기를 기대하지만, 모두가 다 그럴 순 없다. 동학년 선생님들과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건 아닌데 싶은 부분들이 참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나와 다른 부분을 받아들이고, 그 다른 부분을 핑계삼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우를 범하면 안되겠다. 굳이 나와 다른 사람들과 싸우려 들지 말고, 그렇다고 그들을 무시하지도 말고, 내가 공동체에서 해야할 일들을 하나 하나 찾아 감당하는 모습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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