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여 오해하는도다
(마 22:23~32)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과 부활에 관한 논쟁을 벌인다.
사두개인들은 율법을 해석함에 있어 제사장의 역할을 가장 존중하였으며, 예수님시대 제사장에게 충성하던 귀족 계층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들은 "기록된 토라(모세오경)"만을 인정하고, 모세오경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인 "구전적 토라"를 거부하였다.
이러한 사두개인들의 관점 때문에 그들은 부활이 없다 믿었다. 모세오경에 부활에 관한 직접적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사두개인들처럼 귀족계층도 아니고 정치적 권력도 없었지만 백성들 사이의 신망이나 지지가 두터웠던 바리새인들은 전통적 해석에 따라 부활이 있다고 믿었다.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에게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예를 들어 부활에 대해 논쟁하였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결혼한 남자가 아들 없이 죽으면 그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 가문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신명기 25장)
사두개인들은 이 율법에 따라 만일 부활이 있다면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일곱명이 모두 아들 없이 차례로 죽었다가 결국 맏형의 부인도 죽었다면, 부활때에 누가 이 여자의 남편인가 하는것을 물었다. 일곱명 모두와 결혼한 이 여자의 남편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상당히 정교한 논리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은 명쾌한 답변을 내놓으신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자주 등장하는 하나님의 표현을 들어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종종 자신을 드러내실 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율법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흔하게 들어본 하나님이 자신을 표현하시는 방식이다.
이제 예수님이 사두개인들에게 반문한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인가? 아니면 산 자의 하나님인가? 부활후의 사람은 결혼도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의 아내이고 남편인가는 중요하지 않게 되며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산 자의 하나님이신 하나님 스스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이들의 부활을 증명함과 동시에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신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에 대한 사두개인들의 오해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기 때문이라 말씀하셨다. 몰라서 오해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오해라기 보다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기록된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는지는 몰라도, 말씀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말씀 속에서 오직 율법만을 따지다보니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이다.
말씀을 읽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씀 속에 드러나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며 예수님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하지 않았던가?
말씀은 어떤 고상한 지식을 채우거나, 교훈을 깨닫는 것이 아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함께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내가 말씀을 대하는 방식도 사두개인과 같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한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기 보다는 어떤 율법적인 부분들, 지식적인 부분들만을 가지고 내 논리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한다.
몰라서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말씀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힘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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