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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팔 복 (마5:1~12)

by 멧풀다솜 2023.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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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은 예수님이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시작하는 '산상수훈'으로 시작하고, 그 시작은 '팔복'으로 시작한다.

 

산은 구약에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장소로 묘사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계시의 장소로 묘사되고 있다. (마14:23, 마15:29, 마17:1, 마28:16, 출19:3, 출24:18, 출34: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1절)

앉는 행위는 가르치는 자세를 의미한다. 즉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무리를 향해 앉으심으로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하신 것이며, 이에 '무리'들 중에서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제자'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온다. 똑같이 예수님의 가르치심-말씀을 듣고 있지만 '무리'와 '제자'로 나뉘고 있다. 무리들도 분명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고 이전 생활의 그 어떤 것도 버리지 못한 반면에 제자들은 생업과 가족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사람들이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내 모습, 말씀을 펴고 묵상을 하는 내 모습은 '무리'일까? 아니면 '제자'일까?

말씀을 듣는다 하여 다 제자가 아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 제자들이 나왔다는 것은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기 때문이다.

습관적 예배, 습관적 성경묵상은 '무리'의 자세일 뿐이다. 말씀을 듣기는 듣되 그 말씀이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힘을 주지 못하게 된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3절, 10절)

팔복, 즉 여덟 가지 복은 구원의 선언이다. 팔복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은 천국-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 구원의 선언은 듣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음을 약속하고 있다. 동시에 이 약속에 상응하라고 하는 8가지 삶의 자세로 예수님의 강력한 요구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가난한 자들의 벗이었으며, 가난한 자들의 변호자였다. 이스라엘에서 가난은 언제나 곤궁 가운데 그들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의 삶의 충족을 기대하면서 특별히 하나님과 강력한 관계에 들어감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가난한 이들의 경건'이라는 독특한 사상이 발전하였다. (사61:1, 시69:33~34, 습3:12)

따라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오직 모든 소망을 하나님께만 두는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정작 삶의 문제들은 자신의 방법, 세상에 속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하나님만이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며,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 되심을 믿고 구하고 의지하는 태도가 심령이 가난한 자의 태도인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애통함(4절)이 있고, '의'-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공의에 목마름(6절)이 있으며, 때문에 의를 위해서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기도 한다.(10절)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 '온유함'을 입는 사람들은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5절) 약속의 땅은 가나안이며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파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얻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7절)

이러한 사람들은 모든 생각이나 말, 행동에 있어 하나님 앞에 거짓이 없고 순수하다. 그리고 그럴 때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된다. (8절)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하며, 하나님의 평화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일컫게 되는 것이다. (9절)

 

팔복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결국 한 사람을 나타낸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며 화평하게 하는 자. 이 사람은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갈급해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전파하는 온유한 사람이다. 즉 팔복이 말하고 있는 사람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은 팔복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야 하며, 말씀대로 살기 위한 애통함이 있고,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고 정결한 모습을 유지하려 애쓰며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여 하나님의 평화를 전달하는 사람.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이러한 삶의 태도 때문에 주변에서 시기와 질투를 받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박해를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에게 복음으로 인해 욕을 먹고, 박해당하고, 모함을 당한다면 복이 있으니(11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신다.(12절)

 

예수님은 결코 예수님의 가르침-복음을 받아들이면 만사형통하게 될 것이며, 부자가 되고, 자식이 잘 되는 것을 말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욕먹을 것이고, 박해당하며, 모함당하고, 악한 소리를 듣게 되지만 하늘에서의 상이 클 것이기 때문에 이를 기꺼이 감내하고 즐거워하라 말씀하고 계신다.

 

당황스럽다. 역시 괜히 믿었다. 복음 때문이 아니어도 욕먹기 싫고, 모함당하기 싫고, 나쁜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하늘에서의 상도 좋기야 하겠지만 나는 당장 내 삶에서 평화를 누리고 싶고, 편안함을 누리고 싶으며, 인정을 받고 싶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니라니....망했다.

망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아직 내 믿음이 한참 부족한 것이 확실한가 보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난 복음을 받아들였고, 내 의지가 아니라 저절로 믿어지는 이 희한한 현실에서 내가 할 일은 그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팔복의 사람'이 되기를 구하는 수밖에. 억울하고 망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구할 수 밖에. 그리고 그러기 위해 더욱 '팔복의 사람'이 되기를 구하며 애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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