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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마15:21~39)

by 멧풀다솜 2023.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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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나안 여인의 딸을 고치시다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혈이라 천대받았던 사마리아에 들어가신 적은 있으나 이스라엘 지경 밖으로 나가시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자 가나안 여자 하나가 뛰어나와 소리를 질렀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이 들렸나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들떠 보지도 않으신다. 그저 조용히 갈 길을 걸어가실 뿐이었다. 하지만 여자도 예수님께 집요하게 소리를 외치며 도움을 청하였다. 보다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한다.

선생님,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계속 소리를 지릅니다. 쫓아낼까요?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느니라

 예수님의 사역이 이스라엘로 한정되어 있음을 말하신다. 동문서답이다. 제자들은 저 시끄럽게 하는 여자를 쫓아낼지를 묻는데 예수님은 엉뚱하게도 자신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심을 받았단 말씀을 하신다. 아마도 예수님의 이 대답은 여인을 향한 대답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 여인은 이제 예수님의 앞으로 와서 길을 막고 엎드려 간청한다.

주여,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이 간절한 여인의 간구에 예수님의 대답은 싸늘하다 못해 매정하다.

자녀의 떡을 개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개에 비유하곤 하였으나 대 놓고 면전에서, 그것도 간절한 마음으로 도움을 청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곤 믿기 힘든 모욕적인 말이 나왔다. 하지만 이 여인도 만만치 않았다.

맞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예수님의 모욕적인 발언에 이 여인은 그 말이 옳다고 대답한다. 스스로를 개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 부스러기라도 먹게 해 달라는 심정으로 예수님께 간청한다.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하신다.

네 믿음이 크구나! 네 소원대로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과 함께 여인의 딸이 나았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갈릴리 호숫가 산으로 가셨다. 예수님의 목적지는 이 여인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을 위해 국경을 넘어서까지 왔으면서도 여인의 간절함과 믿음을 시험하셨다. 그저 딸을 고치기 위한 간절함인지, 아니면 정말 예수님이 아니면 안 된다는 믿음으로 간구하는 것인지를 시험하셨다.

 

 예수님의 대답이 조금 낯설다. 보통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는 '네 소원대로 되리라' 말씀하셨다. 이미 이 여인의 믿음을 인정하신 것으로 보인다. 이 여인의 믿음을 '크다'라고 표현하신 것이 또한 그렇다. 이스라엘 중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 평가했던 백부장에게도 '믿은 대로 될지어다' 라고 말씀하셨다. (마8:13)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간절함은 어느 정도일까? 되면 좋고, 아님 할 수 없고 정도일까? 과연 나는 이 여인처럼 나 스스로를 개에 비유할지언정,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간절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리라.

 

2. 고치시고 먹이시는 예수님

 갈릴리로 돌아온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근처 산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많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고,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3일째가 되어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 이제 슬슬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했던 식량이 떨어져 갈 때가 되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신다.

이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한지가 벌써 3일째다. 먹을 것이 다 떨어졌을 터인데 돌아가는 길에 굶어 쓰러질까 걱정이 되어 돌려보내지를 못하겠구나.

 제자들이 예수님께 대답한다.

저희가 지금 있는 곳은 광야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겠습니까?

 제자들의 이 대답은 일견 맞는 듯 보이지만 틀렸다. 불과 얼마 전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직접 체험하였다. 그때와 다르지 않은 상황임에도 여전히 제자들은 어디에서 먹을 것을 구하겠느냐 예수님께 묻고, 예수님은 그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서 먹을 것을 좀 모아 보라 명하신다. 그렇기 하여 떡 일곱 개와 생선 두어 마리를 얻었다.

 

 이번에도 예수님은 그 떡과 물고기를 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하고 사천명의 사람들을 배불리 먹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다.

 

 예수님은 떡을 주기 위해 오지 않으셨다. 병든 자를 고치기 위해 오지 않으셨다. 하지만 예수님이 지상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많은 사람들을 먹이셨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불쌍히 여기사" 였다.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하심은 사람들의 연약함을 돌아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광야에서 메추라기와 만나로 먹이셨고, 하나님을 배역한 이스라엘을 위해 사사를 보내시고, 선지자를 보내시며,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긍휼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은 창고에 넉넉하게 옷을 쌓아주고 곡식을 쌓아주지는 않으셨지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일용할 양식'은 언제나 채워주셨다. 문제는 내가 그것이 성에 차지 않을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 채워지며 살아가면서도, 일 년 치 양식을 쌓아두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욕심이 하나님의 고치시고, 먹이시는 은혜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주어진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여전히 오늘 하루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내게 주어진 오늘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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