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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십자가를 지는 삶 (마 10:34~42)

by 멧풀다솜 2019.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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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제자를 파송하는 예수님의 당부 마지막 부분.

 제자들을 늑대 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이 안타깝게 생각하신 예수님은 그러나 제자들에게 두려워 하지 말며, 해야 할 말에 대해 미리 생각하지 말고 믿음으로 나아갈 것과 뱀같은 지혜, 비둘기 같은 순전함을 당부하셨다.


 오늘 본문에서는 제자의 삶이 십자가를 지는 삶과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십자형은 고대 로마에서, 반역을 꾀하는 사람들을 못박아 처형하던 방식이다. 반역자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을 때 까지 고통을 받게 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과 죽은 뒤의 모습을 많은 사람에게 보임으로 다시 반역을 꾀하지 못하도록 하는 잔인한 방식의 처형이다. 또한 십자가형을 당하는 사람은 단순히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게 아니라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까지 채찍을 맞으며 이동해야 했다.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공포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의 삶이 바로 이런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 말씀하신다.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사형장으로 간다는 것이고, 그 길의 끝에는 끔찍한 고통과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제자들은 아마도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에는 그저 예수님이 비유적으로 강하게 표현하신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간에 불화하고, 사람의 원수가 집안 식구이며, 부모나 자식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합당하지 못하다니....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사람이 가족을 사랑한다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살기를 도모할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죽어야 하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정을 끊으려 하지 않을까? 일부러 매몰차게 대하지 않을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제자의 삶이란 십자가를 사랑하는 삶이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다.

 참으로 무거운 사명이다.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삶. 고통을 끌어 안는 삶. 가족을 버리는 삶.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자가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고난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 고난과 핍박을 기꺼이 감수할 것을 당부하시며 제자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대접하고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대접하고 영접하는 것과 같은 복을 얻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저 단순히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 제자의 삶을 살고 싶다 생각하기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무겁다. 감당하기에 벅차다. 정말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일까? 나는 정말 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겠는가? 스스로에게 반문해보고 그러한 용기와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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