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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말씀을 통해서 (마 11:1~10)

by 멧풀다솜 2019.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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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요한의 사역이 끝났다. 감옥에 갇힌 채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세례요한. 세례요한의 관심은 자신이 언제 죽게될지가 아닌, 예수님에게로 향해 있었다. 자신이 그토록 고대하고 기다리던, 그래서 그의 길을 예배했던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면 요한의 사역은 끝나도 상관 없지만, 만일 아니라면 사역을 계속 해야만 했다.


 요한은 감옥에서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는 다시 한번 확신을 얻기 위해 제자들을 보내 예수님에게 질문을 던진다.


 "제가 예비하였던 길로 오신분이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로마의 압제를 무너뜨리고 있지도 않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다니시는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임을 확신했다. 요한의 궁금증은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아니면 자신처럼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시는 분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이 해방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행적은 자신과 크게 다를바가 없어 보였기에 예수님에게 이같은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답하신다. 요한의 제자들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그대로 전하면 요한이 알 것이라 여기셨기 때문이다. 이사야 61장의 예언을 통해 메시아의 사역이 정치적이나 군사적인것에 있지 않음을 일깨워 주시면서 동시에 예언의 성취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향해 세례요한에 대해 선지자보다 큰 자요 사람이 낳은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라 칭하셨다. 주의 길을 예비한 마지막 선지자. 그가 세례 요한이었기 때문이다.


 그 선지자 세례요한도 예수님에 대해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 줄 강력한 힘을 가진 지도자로 생각했던 것이다. 메시아, 구원자에 대해 요한은 당장의 암담한 현실을 벗어나게 해 주실 분이라 생각한 것이다. 요한이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는 어쩌면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다시 구약시대의 신정시대로 이스라엘이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이러한 요한의 오해에 대해 말씀으로 답하셨다. "그래, 내가 바로 너희가 기다리던 메시아다" 이렇게 분명하게 답하시기 보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셨다. 말씀을 통해서만 확신을 얻을 수 있고,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도 그랬을진데 오늘을 사는 나 역시도 하나님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 얼마나 많은 오해를 안고 있으며 내가 원하는 예수님과 하나님을 그려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때 내 믿음의 확신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말씀이다. 말씀을 통해 말씀 속에 드러나신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며, 말씀이 곧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나만의 하나님, 예수님을 벗어버리고 말씀속에 나타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바라보아야겠다. 그래서 더욱 말씀 묵상을 쉬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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