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QT)

씨뿌리는자의 비유 (마 13:1~17)

by 멧풀다솜 2019. 2. 16.
728x90



 씨뿌리는 비유는 마가복음 4장과 누가복음 8장, 그리고 마태복음 13장에 걸쳐 나타나는 비유이다. 예수님은 종종 비유로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 이유에 대해 제자들이 묻자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니 귀 있는자가 듣고 눈 있는자가 보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하신다.


 씨뿌리는 비유는 간단한 비유이다.

 길가에, 돌밭에, 가시밭에, 좋은 땅에 씨를 뿌렸더니 좋은 땅에 뿌리워진 씨가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것.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다.


 제자들이 이 비유에 대해 묻자 다행스럽게도 마가복음, 누가복음, 마태복음 모두 예수님이 이 비유를 풀어 설명하신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 13장

마가복음 4장 

 누가복음 8장

 길가

듣고 깨닫지 못함 

받아들이지 못함

 받아들이지 못함

 돌밭

시련에 넘어감 

시련에 넘어감

 시련에 넘어감

 가시밭

염려와 유혹 

유혹과 욕심

 염려와 재물

 좋은 땅

듣고 깨달음 

듣고 받음

 지키고 인내함


 당연하지만 같은 비유와 같은 해석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몇가지 있다. 오늘 본문의 경우라면 밭이다.


 씨뿌리는 자는 길, 돌, 가시, 좋은 땅(밭)에 씨를 뿌린다. 이상하지 않은가? 씨는 당연히 밭에 뿌리는 것이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에 뿌리는 것은 미련한 것이다. 좋은 열매를 맺기 원한다면 당연히 좋은 땅에 뿌리거나, 씨를 뿌리기 전에 밭을 일구고 갈아야 하는 것 아닌가?


 두번째는 밭의 의지이다. 밭은 스스로 갈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길가인 내가 밭으로 만들 수 없다. 돌밭인 내가 돌을 제거할 수 없고 가시밭인 내가 가시덤불을 제거할 수 없다. 내가 스스로 좋은 땅이 될 수 없고, 좋은 땅은 씨뿌리는자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 다시 말해서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하셨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길가, 돌밭, 가시밭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눈이 봄으로, 들음으로 복이 있다 말씀하신다.(16)


 내가 내 밭을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좋은 밭으로 만들어달라 간구하는 것 아닐까?


 쟁기를 들어 밭을 갈고, 돌을 제거하고, 가시덤불을 없애는 것을 할 것이 아니라, 씨 뿌리는 자-예수님에게 나를 좋은 밭으로 만들어달라 간구해야 할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밭이 해야 할 일은 씨가 뿌려졌을 때 그 씨를 품고, 양분을 공급하여 힘을 다해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고, 그 밭을 준비하고 자라게 하시는 농부는 하나님이시지 않을까?


 그랬다. 내 힘으로 내 나쁜 습관들, 염려, 환란을 이길 수 없다. 아무리 애써 보아도 생각하지 않으려 하였던 세상의 염려가 튀어 나오고, 조금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쓰러지고, 때론 말씀을 너무 가볍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서 내 밭을 갈아주시기를, 내 밭을 좋은 땅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그래서 내가 말씀(씨)을 품고, 힘을 내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함을, 또한 그 열매가 내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말씀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728x90

'묵상(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자씨와 누룩 (마 13:31~43)  (0) 2019.02.18
곡식과 가라지 (마 13:18~30)  (0) 2019.02.17
표적 (마 12:38~50)  (0) 2019.02.15
나무는 열매로 안다 (마 12:31~37)  (0) 2019.02.14
눈을 닫고, 귀를 닫고 (마 12:22~30)  (0) 2019.02.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