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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곡식과 가라지 (마 13:18~30)

by 멧풀다솜 2019.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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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밭의 비유(씨뿌리는 자의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씨뿌리는자의 비유를 풀어주신다.


 예수님이 이렇게 제자들에게 비유를 풀어서 설명해 주시고, 그 내용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비유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해석 과정에서 불필요한 의미들이 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씨뿌리는자의 비유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형태에 대한 비유라고 설명하셨다.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길가와 자심 기쁨으로 받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넘어지는 돌밭, 그리고 염려와 재물의 유혹때문에 열매맺지 못하는 가시밭, 듣고 깨닫는 좋은 밭이라고 설명하시면서 다른 해석을 덧붙이지는 않으셨다.


 말씀을 대할 때 나는 습관적으로 어떤 다른 의미가 있지는 않은가 탐구하고 찾아보는 편이지만, 그것이 꼭 좋은 습관만은 아니다. 오늘 본문처럼 예수님이 직접 설명해 주신 부분은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자꾸 다른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경향은 어쩌면 그저 지적인 유희에 불과하고 말씀을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되기도 할 듯 싶다.


 곡식과 가라지 비유는 밭에 씨를 뿌렸는데 원수가 밤에 몰래 가라지를 뿌려놓아 싹이 날 때 하인들이 이 가라지를 뽑을까 주인에게 묻자 주인은 추수때 까지 두었다가 한꺼번에 뽑으라는 내용이다.


 제자들은 이 비유에 대해 예수님께 물었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대답해주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것은 예수님,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가라지는 악한자의 아들들, 추수때는 마지막날 심판, 추수꾼은 천사. 꽤나 명확하고 간결한 비유이다.


 일반적인 농사법에서는 추수때 까지 잡초를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미리 뽑아 좋은 양분이 온전히 곡식에게 가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인 농사법이다. 그러나 밀농사에서 가라지는 모양이 밀과 거의 흡사하게 자라나며 뿌리는 밀보다 깊이 박혀 자란다.

 때문에 가라지를 미리 뽑으려 하면 자칫 밀 뿌리가 딸려 나올 염려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밀을 뽑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가라지는 다 자라고 나면 그 모습이 밀과는 확연하게 구분이 되어 추수때에는 쉽게 뽑아낼 수 있고, 뽑을 때에 밀이 함께 뽑혀도 상관 없다. 어차피 추수를 위해 다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뽑아낸 뒤 가라지는 한곳에 모아 태워버리는 것 뿐이다.


 내가 밀인지, 가라지인지는 구분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밀인지, 가라지인지도 구분할 수 없다. 추수때까지는 그대로 두시기 때문이다. 밭 주인도 그대로 두는데 가끔 나는 내가 가라지를 뽑으려 들 때가 있다. 어쩌면 내가 가라지일수도 있는 노릇인데 다른 사람을 보고 곡식인지 가라지인지 따질 때가 있다.


 작물이 해야 할 것은 자라는 것이고, 추수꾼은 추수를 할 것이다. 어쩌면 내가 가라지일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겸손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라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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