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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천국 (마 13:44~58)

by 멧풀다솜 2019.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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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나는 다양한 천국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 첫번째로는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고, 이어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오늘 본문에서는 밭에 감추인 보화,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 고기잡는 그물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천국에 관한 비유를 듣고있노라면, 예수님이 설명하는 천국과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이 약간 차이가 있는 듯 싶다.


 예수님이 설명하고 계시는 천국은 하나님이 계시고 다스리시는 하늘나라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복음, 말씀에 더 근접한 듯 싶다.


 어떤 사람이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고는 도로 묻어두고는 돌아가 자신의 전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산다. 아마도 그 보화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행동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게 이상할 것이다.


 좋은 진주를 구하러 다니는 상인이 마침내 매우 귀한 진주를 발견했다면, 역시 전재산을 팔아 그 진주를 구매한다.


 감추인 보화와 진주를 구하는 상인에서 핵심은 전재산과 보화, 혹은 진주의 가치의 차이이다.

 감추인 보화도, 마침내 구하게 된 좋은 진주도 분명 그 사람의 전재산보다 높은 가치를 지녔을 때 이 비유는 성립이 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밭을 사는 사람이나 진주를 사는 이 상인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말씀, 복음이 과연 이만한 가치가 있을까?

 밭에 감추인 보화는 그 보화를 발견한 사람만이 그 밭의 가치를 안다. 좋은 진주를 사는 사람 역시 그 진주의 가치를 알아보기 때문에 전재산을 팔아 그 진주를 사려한다.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전재산을 팔아 사려 하지 않을것이다.


 아주 명쾌하고도 단순한 논리이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목숨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믿는 믿음이, 복음이 목숨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결코 순교를 할 수 없다.


 천국에 관한 예수님의 다음 비유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이다. 그물로 물고기를 가득 잡인 뒤 뭍에서 가치가 있는 물고기는 담고, 가치가 없는 물고기는 내버린다. 마지막 날에 천사들이 의인가운데 악인을 구분해서 내치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의인은 의로운 사람이라기 보다는 "믿는 자"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인다. 마지막 날에는 믿는자들 가운데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믿는 척한 사람"이 구분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보여진다.


 사실 믿는 척 하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곡식과 가라지를 수확때에 구분할 수 있듯이, 혹은 미리 제거하다가 곡식을 다치게 할 수 있듯이, 믿는 척 하는 사람들을 명확하게 구분해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종종 믿는다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나기도, 상처를 받기도 한다. 차라리 믿는다는 티를 내지 말던가... 분명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교회 열심이 다니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참 용납하기 힘든 말이나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그들을 쉽게 판단할 수 없지만, 교회 안에, 믿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물에 어찌 상품가치가 있는 물고기만 걸릴까. 때론 신발도 걸리고, 패트병도 걸린다. 그건 그물을 추스리는 과정에서 걸러내야 할 것들이다.


 예수님이 고향에서 말씀을 전하시니 사람들의 반응은 목수의 아들, 마리아의 아들, 야고보와 요셉과 시몬과 유다의 형제로 받아들인다.


 밭에 감추인 보화,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진주의 가치이다.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 잘 알려진 사람의 사소한 말에 크게 감동하거나 대단하다고 여기면서도 정작 가까운 사람, 잘 아는 사람의 좋은 말과 행동에 대하여는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능력을 보지 않고 그들이 알고 있는 목수의 아들 예수만을 생각했다. 그러니 예수님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이다. 말과 행동, 행함으로 보지 않고 선입견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학년발표와 사무발표가 났다. 선생님들은 이전 담임들에게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에 관한 정보를 주고 받기 바쁘다. 매우 친절한(?) 선생님들은 내게로 와서 명단을 좀 보자 하신다. 정보를 주기 위함이다.


 "이 아이들 중에 편부, 편모, 다문화, 조손가정 등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아이가 있나요?"


 내가 원하는 정보는 단 하나이다. 사회적 약자가 있는지...인성이나 학부모의 성향을 이야기 해 주려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 그때 다르고 매년 다르니까 그건 제가 겪어가면서 알아갈게요"


 순수하게 학생의 학교에서 내게 보여지는 모습을 판단하기 위함이다. 미리 선입견을 가지려 하지 않기 위함이다.


 밭 주인은 밭에 보화가 숨겨져 있는것을 몰랐을 것이고, 어쩌면 곡식이 잘 자라지 않는 밭이라 헐값에 내놓았을지도 모른다. 진주를 파는 상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진주중에 극상품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모조품을 취급하는 상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밭의 가치, 진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닐까? 진짜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보여지는... 그것이 천국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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