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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마 14:22~36)

by 멧풀다솜 2019.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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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에 태우시고는 모여든 사람들을 흩으신다.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예수님이 왕이라면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 생각했다. 요한복음 6장에서는 군중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긍휼때문에 군중들을 먹이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긍휼이나 천국의 복음보다는 당장의 끼니가 걱정이었고, 로마의 압제가 걱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처럼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을 억지로라도 왕으로 세우려 한 것이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모였지만, 예수님의 가르치심 때문에 모여들었지만, 그들의 관심은 복음이 아니라 왕이었다. 예배를 하고, 묵상을 하고, 찬양을 하지만 나의 관심이 하나님과 예수님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 필요나 욕구를 채우기 위함인지 돌아봐야 할 일이다.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보내신 예수님은 날이 저물때까지 산에서 홀로 기도하셨다.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신 것이다. 사람들의 칭찬, 명성, 임금으로 삼으려 하는 추앙,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 온전히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시는 예수님.


 그러지 않으려 해도, 때론 선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해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면 금새 초심을 잃고 내가 무엇이라도 된 양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기도해야 한다. 동료교사들의 칭찬, 학부모의 칭찬, 수줍게 건네는 아이의 미소와 편지가 고맙지만 그럴 때 난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교만은 순식간에 내 처음의 순수한 마음을 뺏어가기 때문이다.


 

 한편 제자들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고생을 하고 있다. 새벽이니 캄캄한 바다에서 풍랑과 사투를 벌이는 제자들의 어려움이 어떠할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안그래도 캄캄한 새벽 풍랑으로 힘든데 예수님이 바다를 걸어서 건너오시니 제자들은 기겁을 한다. 유령, 혹은 귀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셨다. 

 "안심해라! 나다! 무서워할 필요 없다!"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은 베드로는 자기도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는 체험을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기에게도 물위를 걸으라 말해주시길 청하였고, 예수님은 흔쾌히 이를 허락하셔서 오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갔다. 그러나 파도를 본 베드로는 겁이 났고 그순간 물에 빠져 예수님께 살려달라 요청한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잡아 일으켜 세우시고 믿음이 적어서 의심했기 때문이라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물길위를 걷는 것을 보았을 땐,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땐, 베드로는 두려움이 없었다. 자기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실제로 물 위를 걸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변한건 아니다. "이제 되었다!" 안심하는 순간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고 두려움이 찾아왔다.


 안풀리던 일이 풀리고, 더구나 오래 기도하던 기도응답을 받았을 때 얼마나 좋은가? 세상을 다 가진것만 같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럴 때 하나님만 바라보던 시선은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또다른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바다에 빠지게 된다.


 내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되면 좋겠으나, 그게 참 쉽지가 않다. 거센 파도와 바람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소망이 있는 것은 물에 빠졌을 때, 넘어질 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예수님이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물 위를 걸으면 좋겠지만, 물에 빠져도 괜찮다. 도움을 청할 예수님이 앞에 계시고, 기꺼이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아둥바둥 살려고 헤엄치기 보다는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 간절한 기도가 나를 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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