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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서명을 하다 (느 10:1~39)

by 멧풀다솜 2019.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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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을 하다

(느 10:1~39)


하나님 앞에 회개한 이스라엘은 단지 죄의 자복과 회개로 그치지 않고 구체적 실천의 의지로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을 한다. 그리고 그 서약의 내용을 기록하여 서명한다.


 총독 느헤미야부터 제사장, 각 지파의 수장들, 지도자들이 대표가 되어 서명을 하고 맹세한다. 맹세의 내용을 글로 적음으로 구체적이며 항구적인 맹세로 다짐했고, 서명을 함으로 다시 한번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한 것이다.


 이방신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게 된 이유 중 하나인 이방민족과의 결혼을 하지 않기로 다짐하며, 안식일과 안식년에 관한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겠노라 맹세한다.


 성전세를 납부하고, 율법에 명시된 각종 제사를 지키며, 아들부터 시작하여 모든 소산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고 십일조를 바치겠다 맹세한다.


 이 모든 맹세의 핵심은 율법의 준수이며, 하나님의 성전을 돌보는데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율법대로 지키며 하나님의 성전을 돌보는 것은 그들의 신앙을 매 순간 기억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며,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공동체임을 인식한 것이다.


 오랜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민족과 국가가 일반적으로 가장 신경쓰면서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치체제를 정비하고, 사회를 정비하며, 무엇보다 강력한 군대를 키워 국방을 든든히 하는 것이다.


 성벽을 재건하는 사업을 주변에서 끊임없이 방해한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일반적인 수순중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강한 군대를 키워 황제로부터 독립하려는 반역을 도모한다는 명분 역시도 그래서 들이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벽재건 이후의 이스라엘의 행보는 인간적으로 보면 참으로 미련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제 막 성벽을 세웠는데 최소한의 파수꾼들을 세워둔 채 모든 백성이 모여 집회를 연다. 하루종일 서서 율법을 낭독하고 엎드려 기도하고 회개운동을 벌인다.


 이럴 때 외부의 침략이 있다면 몰살인다. 참으로 미련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분명히 알았다. 자신들을 지키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며, 자신들이 무너져 포로가 되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히 알고 하나님 중심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 만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도 하고, 때로 실패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실패가운데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실패를 통해 거듭나는 사람이 있다. 이스라엘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 다시금 하나님 중심의 신앙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있다.


 사울은 실패를 통해 넘어졌지만, 다윗은 실패를 통해 하나님께 돌이키는 모습을 보였다.

 내 삶에서 무너진 부분은 무엇이며, 성벽이 무너진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일단 내가 안정을 찾고 난 이후에 하나님을 열심을 내어 섬기겠노라 말한적은 없었는가?

 무엇보다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말씀이며, 회개이며, 기도와 더불어 구체적인 실천의 결단이다.


 개학이후 오늘까지 고작 2주도 안되는 기간인데 몸이 많이 피곤하다.

 교장선생님의 정년퇴임, 새로운 교장선생님의 취임, 개학식과 입학식, 그리고 오늘 학부모 총회...벌써 입술이 트기 시작한다. 매일 10장 이상의 통신문과 수업시간에도 끊임없이 울려대는 업무 메신저소리, 담당 업무에 대한 교육청 감사준비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그럴수록 더 말씀 앞에서 서서 나를 다잡고, 말씀을 통해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법을 깨닫고, 그렇게 힘겨운 발걸음을 하나 하나 내딛는 것이 중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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