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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역사에서 배우다 (느 9:23~38)

by 멧풀다솜 2019.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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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배우다

(느 9:23~38)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1931)'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하였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결코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하였다. 역시나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의 미래를 전망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성벽재건과 회개운동을 통해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때부터 포로에서 돌아올 때 까지를 회고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들과 조상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있다.


 광야생활 이후 가나안 입성과 정복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다.(23~26)


 범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이방 나라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자 그때서야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은 사사들을 통해, 선지자를 통해 다시금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또다시 배반하고, 환란가운데 부르짖어 구원받고, 또다시 배반하는 은혜와 배반과 긍휼의 역사를 반복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이 약속하신 약속의 땅에서 오히려 이방 나라의 종이 되는 비참한 현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36)


 이제 그들은 다시 성벽재건과 예루살렘성의 복원이라는 역사적 순간 앞에서 다시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그 서약을 기록하여 서명한 뒤 봉인한다.


 구체적 실천을 동반하지 않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라 후회이며 죄책감이며,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얄팍한 핑계의 수단밖에 되지 않는다. 진정한 회개는 구체적인 실천의 다짐과 그 다짐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세례요한이 말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 아닐런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크게, 혹은 작게 의심이 파고들고 혹은 나태해지고, 혹은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관성적인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순간이 있다. 거창하게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가 아니라 내 개인의 신앙사를 돌아보아도 얼마나 많은 순간 이스라엘과 같이 배반과 긍휼의 반복이었던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그 모든 배반들은 '안일함'이 아닐런지. 지속되는 은혜에 대한 안일함. 현실에 만족하는 안일함. 이만하면 되었지 하는 안일함. 다 그런거야 하는 안일함. 그 수많은 안일함들이 모여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개인의 신앙에서도 이러한 안일함은 무섭고도 교묘하게 파고든다.

 내가 내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이유는 이러한 안일함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며, 삶 가운데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려 했던 순간들을 기억하여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작은 내 개인의 역사, 이스라엘의 역사, 우리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말씀이라는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내 삶의 방향, 신앙의 발걸음을 찾아 한걸음씩 내딛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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