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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잃은 양 한 마리 (마 18:11~20)

by 멧풀다솜 201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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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양 한 마리

(마 18:11~20)


 어제 본문에 이어 예수님은 하나님이 한 생명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가를 설명하고 계신다.


 어떤 사람에게 양이 백마리가 있어 그 중 한 마리가 길을 잃는다면 그 한 마리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설 것이고, 그 찾은 양 한 마리 때문에 기뻐할 것 처럼 하나님은 보잘것 없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일지라도 귀하게 여기신다.


 하나님이 이렇듯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기에, 한 영혼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온 힘을 다해 애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그렇기에 친구가 죄를 범하거든 죄를 지적하여 권고하되 단 둘이 있을 때 해야한다.

 여러 사람 앞에서 한다면 상처를 입을수도 있고, 그래서 오히려 반발심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둘이 있을 때 말해도 듣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증인이 될 사람 두세사람과 함께 말할 수 있다.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교회(믿음의 공동체)에 말하고,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이방 사람처럼 여기는 것이 옳다.


 한 사람의 죄를 방치하는 것도 죄가 되겠으나, 그 죄를 지적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심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예수님은 앞서 한 사람을 실족하게 할 바에야 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게 좋다고 하실 만큼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일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셨다.


 그래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한 것 처럼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이 돌이킬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제공하고 힘쓰는 것이 예수님의 방식인 것이다.


 죄를 범한 형제는 잃은 양이다. 길을 잃은 양이니 나머지 아흔 아홉 마리를 위해 내버려 두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 한마리를 찾을 때 까지 찾는 마음으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단 둘이, 그래도 안되면 두세사람과 함께, 그래도 안된다면 교회와, 그마저도 듣지 않는다면 그 때 포기해도 늦지 않은 것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요, 하나님은 이런 사람이 땅에서 묶은 것을 하늘에서도 묶고, 땅에서 푸는 것을 하늘에서도 풀어주실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같이 하여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면서 공동체를 이루고 한 사람도 실족함이 없도록 애쓰는 것이 하나님이 진정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너무도 쉽게 다른 사람을 정죄한다. 입으로 내어 말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얼마나 많은 정죄를 하였던가. 정죄를 하기에 앞서 긍휼이 있어야 하며, 정죄를 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이키도록 애쓰는 모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잘못하는 사람을 무시하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내게 얼마나 편한가? 왜 굳이 내가 싫은 소리 들어가며 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마음을 상하고 해야 하는가? 그냥 나와 함께 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들과 함께 어울리면 되지 않을까?


 하나님이 원하는 공동체는 "우리끼리"가 아니다. 우리 속에 포함되지 못한 한 사람. 우리가운데 있다가 나간 한 사람. 그 사람을 위해 공동체가 함께 마음을 쓰고, 기도하고, 찾을 때 까지 찾는 그런 모습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이다. 그리고 그 공동체를 이루는 기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정죄하기 보다는 먼저 기도하고, 긍휼히 여기고, 찾도록 찾는 그 마음을 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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