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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화 있을진저 (마 23:13~28)

by 멧풀다솜 2019.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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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있을진저

(마 23:13~28)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라 외치신다.

 이 표현을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에라이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들아!" 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수님이 이처럼 강하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질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로서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며 많은 사람들을 모았으나, 정작 그들의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가까이 가기는 커녕 멀어지게 만들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그들의 가르침에 대해 맹인이 길을 인도하는 꼴이라 말씀하신다.


 성전을 두고 하는 맹세보다 금을 두고 하는 맹세를 더 강요하고, 제단을 두고 맹세하기 보다 제물을 두고 맹세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완전하심 보다는 금과 제물에 더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는 격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십일조를 중하게 생각해서 밭의 소산이 아닌 뜰에서 나는 회향 박하와 뿌리채소까지도 십일조를 바치면서 하나님의 정의와 긍휼, 믿음은 무시하였다. 십일조를 철저하게 드리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 격이라 말씀하신다.


 거룩한 척 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타는 잔과 대접을 깨끗하게 씻었지만 그 속에 탐욕과 방탕을 채우고, 회칠한 무덤처럼 아름답게 보이려 애쓰지만 실상은 그 속에 썩은 시체가 가득함과 같다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러한 강력한 질타는 바리새인들의 가식적인 신앙생활과 백성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서 하나님을 경외하기는 커녕 오히려 재물에 더 욕심을 내는 이중적 모습을 향한 꾸짖음이었다.


 가르치는 사람,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더 주의해야한다.

 가르치는 자가 잘못 하면 그 가르침을 받는 많은 사람들을 잘못 가르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훨씬 더 엄격한 기준으로 행동해야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그 엄격한 기준을 오히려 자신들이 가르치는 사람들에게만 적용하였다.


 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예수님의 질타가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나의 사소한 말과 행동이 학생들에게 하나 하나 표본이 될 것이다. 내 말보다는 삶의 태도를 학생들은 더 배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는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 학급운영을 독재로 해서도 안되고, 학생들에게는 사랑을 가르치면서 내가 학생들을 편애하여서도 안된다.


 가르치는자로서의 책무와 중함을 늘 인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하나 하나 점검하며 기도하며 그렇게 한걸음씩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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