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참으로 험난한 생을 사셨다.
부모복도 없이 자라 아버지에게 시집와서 평생을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사셨다.
철없던 시절,
나도 남자라고, 아버지에게 고상하게(?) 말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이해 안되고 살짝, 싫었던 적이 있었다.
손재주 좋고 사람 좋았던 아버지에 비해 아득 바득 살아가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크면 클수록 어머니는 내게 산보다 큰 존재였다.
조미료 없이 재료가 가진 맛 만으로 탁월한 맛을 내는 음식솜씨는 조금이라도 입에 안맞으면 먹지 않는 내 까다로운 입맛에도 최고의 음식이었고 요리였다.
아버지의 박봉과 사람 좋은 마음씨 탓에 우리 형편에 좌절될 만큼의 큰 경제적 손실 속에서도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부족한 것 없이 자랐고 아들 둘을 번듯하게 키워내셨다.
내가 신혼때는 두 딸을 데리고 집에 오면 집이 늘 반짝 반짝 했다.
어머니는 나와 아내가 없을 때 오셔서 온갖 집안일과 청소를 해 놓고 내가 퇴근하기 전에 집에 가시곤 했다.
아들 기름값과 수고를 아끼기 위해...
지금도 아들집에 오실일이 있을때면 기어이 버스를 타고 도망가시는 그런 어머니다.
언젠가 부터 홀로 계시는 어머니에게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생각해서 매일 퇴근시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러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어머니와 통화 중 어머니가 한마디 하셨다.
"나는 요즘 살맛이 난다"
"왜요?"
"네가 매일 전화하고 그러니까 좋다"
그 말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죄스러웠는지 모른다.
그깟 전화통화에 그리 좋아하시다니....
그런 어머니가 며칠 전 목소리가 급격하게 안좋아지셨다.
왜 그러냐 물으니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은행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용어도 낯설고, 귀도 어둡고 하니 뭔 소린지도 모르겠고 무식하고 답답해서 힘드셨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미안하단다.
무식한 엄마라서 미안하고 글자도 몰라 받아 적으라는 것도 못해서 미안하고, 자식들 보기 창피하고 자식들도 창피하게 여길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단다. 진작에 아버지가 한글 배우라고 할 때, 그 때 배울걸 하시며 우울해 하셨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엄마는 절대 미안한거 없고 창피한거 없다 말했다.
그렇게 사신 결과가 아들 둘 번듯하게 키우신거고, 집을 장만하신거고, 때에 따라 아들 내외와 손주들에게 용돈까지 주시는 그런 어머니다.
미안하고 죄스러운건 오히려 나였다.
명색이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인데, 어머니에게 한글 가르쳐 드릴 기회가 있을 때 가르쳐 드리질 못했다.
퇴근하는길에 어머니와 통화를 끝내고 쿵쾅거리는 가슴때문에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없어 잠시 차를 세우고 가슴을 진정시켰다.
어제 퇴근길에 어머니에게 연락도 없이 들러 저녁을 얻어먹고 왔다.
어머니가 오늘은 전화하면서 다음에 올 땐 미리 연락을 하라고 하신다.
갓 지은 따슨밥을 주시던 어머니가 어제처럼 예고 없이 찾아가니 마음이 안좋으셨던게다.
"엄마, 미리 전화했으면 오지 말라고 했을거면서.....난 엄마 얼굴보고 싶어 간거야, 라면 끓여 먹어도 좋고 그냥 안먹고 와도 좋아"
그렇게 말씀 드렸지만, 어제 어머니 집을 나서는 내 손에는 어머니가 냉동실에 재워 두셨던 잡채 두봉지가 있었다.
어머니는 꼭 그렇게 뭐라도 쥐어주시고, 철마다 좋다는 음식을 해서 먹으러 오라는 핑계로, 가지고 가라는 핑계로 아들 얼굴을 보려 하신다.
그런 어머니가 내게는 산이고, 강이고, 바다이며,
그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나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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