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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마1:1~17)

by 멧풀다솜 2023.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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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를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릴 때에는 이런 본문은 참 읽기도 어렵고, 묵상은 더 어려웠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나열하면서 몇 가지 특이한 방식을 사용한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와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의 내용은 많이 다르다.

또한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의 족보는 구약의 역대서와도 조금 차이를 보인다.

 

마태는 전형적인 유대인들의 역대 왕들의 족보를 기록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였다.

그러면서 아브라함 부터 다윗까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바벨론 포로부터 예수님까지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각각의 부분들이 14대가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숫자 14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유대인들은 히브리어 각 자모를 이용하여 수를 나타내기도 하고, 어떤 상징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예언서에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였고, 그 메시아로 하나님의 굳건한 나라가 다시 서기를 갈망하는 유대인들은 '다윗'의 히브리 자모가 가지는 수의 값인 14를 다윗이면서 메시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의도적으로 이렇게 기록함으로써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아이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의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에도 특이점이 있다.

유대인들은 '혈통'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자신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있으며, 그 혈통을 깨뜨린 결과 이스라엘이 멸망하였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이방인을 배척하고 순수한(?) 유대의 혈통-아브라함의 후손을 지켜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사마리아를 가로지르는 짧은 길을 놔두고 크게 돌아 사마리아를 거쳐가지 않으려는 유대인들의 습관도 이러한 혈통에 집착하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이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하면서 의외의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14대에 맞추어 족보를 기록하기 위해 모든 이름을 나열하지도 않은 마태는 굳이 유대인들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름들을 족보에 끼워 넣고 있다. (특히 족보에 여자를 기록하는 경우는 없음에도 마태는 일부러 여자들 몇 명의 이름을 넣고 있다.)

 

다말은 시아버지와 동침하기 위해 창녀 행세로 유다를 속여 베레스를 낳은 여인이다. 다말의 행동은 후대를 남기기 위한 '계대혼'의 의무를 유다가 이행하지 않자 이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감추고 싶은 불편한 불륜의 이야기이다.

라합은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탐할 때 정탐꾼들을 도와 자기와 가족들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여리고의 창녀였다. 신분 자체도 비천한 창녀인데 한 술 더 떠서 유대인들이 그렇게 기피하는 '이방인'인 것이다.

또 한 명의 이방 여인이 등장하는데 룻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룻은 과부가 되어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시어머니를 보필하다가 보아스의 눈에 띄게 되어 보아스와 결혼한 이방 여인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족보에 마태가 기록한 여인은 밧세바다. 그런데 마태는 밧세바라 하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라고 기록하였다. 유대인들이 거의 신적으로 추앙하는 다윗의 흠집을 기어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족보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순수한 혈통과 아브라함의 후손을 자랑처럼 강조하는 유대인들에게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다말, 라합, 룻, 밧세바를 언급함으로써 예수님이 예언에 기록된 메시아임을 밝힘과 동시에 순수한 혈통의 무의미함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마태는 숫자 상징법을 통해 14대를 강조하기 위해 요람과 웃시야 사이에 아하시야와 요아스, 아마샤 세 임금의 이름을 빠트렸는데 정작 기록하기 껄끄러운 인물들은 기록을 하고 있다.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나 지나친 부역과 세금을 감소해 달라는 백성들의 청원을 거절하여 북쪽 지파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1세를 왕으로 하는 북이스라엘과 르호보암이 다스리는 남유다로 분열되었다.

아비야의 경우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지만 열왕기서에선 그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였고 많은 죄를 행하였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 살려두신 왕으로 기록되고 있다. (왕상15:3~5)

므낫세는 히스기야의 아들이면서도 종교적 개혁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애썼던 히스기야와는 반대로 남유다를 우상숭배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으며 무죄하고 경건한 자들을 많이 죽인 악한 왕이었다. (왕하21:1~9,16)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도 므낫세가 톱으로 켜서 죽였다고 전해지니 참으로 악한 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사실 묵상하기가 어려운 본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쓸데없이(?) 족보를 추적해 역대서와 열왕기서를 들여다보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게 된다.

 

예수님 시대 유대인들과 서기관들, 제사장들, 바리새인들은 '혈통'을 중시하면서 자신들만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 믿었지만 예수님은 그런 모습들을 맹렬히 비난 하셨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주장하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 창녀, 죄인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계획과 은혜를 보여주고 예수님을 통한 구원만이 참 구원임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혈통', '지식'을 가지고 '나는 저들과는 달라' 하는 마음을 얼마나 자주 가지게 되는가.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마치 내가 뭐라도 되는 양, 나는 다른 양 마음속 감춰진 교만을 품을 때가 많다.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내가 이방인이며, 내가 창녀이며, 내가 악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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