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QT)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오다 (마2:1~12)

by 멧풀다솜 2023. 1. 21.
728x90

 

 

동방(아마도 페르시아, 또는 바벨론 쪽으로 추정)에서 박사들이 찾아왔다.

이 박사들은 헬라어 '마고스'를 번역한 것인데 원래의 의미는 천문학과 점성술에 종사하던 페르시아의 제사장 계급 구성원을 나타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바벨론이나 다른 곳의 점성가들을 의미하는 낱말로 사용된다.

박사들은 별을 보던 중 미래의 이상적인 위대한 통치자가 태어났음을 발견하고는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에게 물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예루살렘은 발칵 뒤집어졌다.(3절) 왕이라니? 유대인의 왕이라니? 반란이라도 일어나는 건가? 그럼 헤롯왕은?

더구나 그들이 '경배'하러 왔다니?

여기에서 사용된 '경배'-헬라어 '프로스쿠네오'-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허용되는 단어이다. 그럼 예루살렘에 메시아가 나타났다는 말인가?

 

헤롯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메시아가 어디에서 나는가 묻는다.

이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미가서 5장 2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베들레헴이라 답한다.

그러자 헤롯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불러 베들레헴으로 갈 것을 지시하며 자기도 경배하러 갈 터이니 아기를 만나거든 알려달라 당부한다.

 

이스라엘-유대인들은 간절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한 예언서를 통해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헤롯이 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 묻고 대답한 내용을 보아도 그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잘 알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부분이 있다.

이방인인 동방의 박사들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탄생의 조짐을 보고 경배하러 왔는데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혼란에 빠진다. 오히려 크게 기뻐하고 앞다투어 경배하러 가야 할 일이 아니던가?

예수님은 이미 탄생부터 유대인들, 대제사장, 서기관들에게 배척당하고 계신 것이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이방인이 먼저 예수님을 찾아 경배하러 왔다.

 

박사들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별을 따라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아기예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 이 세 가지 예물은 보통 왕에게 바치는 예물로 알려져 있는 것들이다.

유향은 성전에서 희생제물에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몰약의 경우 단 맛이 나는 매우 비싼 약재 중 하나인데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을 장례지낼 때 사용하기도 하였다.

 

박사들은 헤롯왕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꿈에 나타나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도록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길을 통해 자기들 나라로 돌아갔다.

 

성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은 정작 그리스도의 나심을 눈치채지 못했고, 예수님의 생애 내내 예수님을 배척하고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였다.

 

예전에 읽었던 "예수"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워낙에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인지라 작가가 누구인지, 어디 출판사 책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매우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께 의탁 하나이다"를 말하고 숨을 거두시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한 제사장이 "아차! 그를 죽이지 말았어야 했다!" 하며 탄식하는 장면이다.

그 제사장은 예수님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는 순간 모든 메시아를 향한 구약의 예언들이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죽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다고 동료 제사장에게 말하였다.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말씀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경을 내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한다. 먼 길을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처럼 말씀이 내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야 하고 삶의 지침이 되도록 해야 하겠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