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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시험 받으시는 예수님 (마3:13~4:11)

by 멧풀다솜 2023.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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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는 과거의 삶을 씻어 내고 하나님의 통치 앞에 전적으로 굴복하여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루겠다는 약속이다.

예수님은 요단 강가에서 세례를 주고 있는 요한에게로 가서 세례를 받으려 하신다.

요한은 당황하여 자신이 감히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 수 없다 말한다.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었으며 자신의 사역이 예수님이 베푸실 세례를 준비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의를 이루는 일임을 말씀하시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가로 나오자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려 오셨다 말씀하기도 하셨다.(요13:3~15)

예수님의 섬김의 본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모습을 보이심으로 본격적인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그리고 섬김의 마지막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으로 완성된다.

 

안 그래야지 안그래야지 하면서도 자꾸 섬김을 받으려는 마음,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내가 먼저 움직이고 섬겨야 하는데 자꾸 내가 이만큼 하면 이 정도 인정은 받아야지 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 학생들에게, 학부모에게, 동료교사에게, 가족에게....

예수님을 닮고 싶다고 입으로만 말하고, 머리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섬김의 자세를 보여야 하겠다.

 

세례를 받으신 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여 하나님의 응답까지 있었다. 이제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의 모든 불의함을 멸하실 것이다! 그게 올바른 수순 아닌가? 그런데 놀랍게도 그다음 수순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서 40일을 굶주리신다. 이게 말이 돼?

 

성경은 늘 그렇다.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이 왕이 되긴커녕 여전히 목자로서 전쟁터에 형들이 나가 있을 때에도 양을 지키다가 드디어 골리앗을 쓰러뜨렸는데 왕은 고사하고 도피생활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 역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 속이면서 유랑생활을 한다.

꿈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요셉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고, 바알의 추종자들과 맞서 홀로 큰 승리를 거둔 엘리야는 자신을 죽이겠다는 왕후의 선포에 놀라 도망을 치다가 배고픔에 차라리 죽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때, 준비가 되었다 생각할 때.

그때가 어쩌면 가장 위험한 순간일 수 있다. 그 때가 나를 스스로 시험해 보고 정말로 준비가 되었는지를 확인하고 점검해야 할 때가 아닐는지. 마치 예수님이 세례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신 것처럼.

 

인간이 굶주릴 수 있는 한계가 40일이라고들 한다. 40일을 굶은 예수님에게 마귀는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먹는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 요구한다. 하나님의 이적을 통해 정말로 굶주린 자들을 먹일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8장 3절을 인용하여 대답하신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3)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오신 메시아가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신 것이다.

 

조금 아쉽다.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육체적 필요, 경제적 필요, 사회적 필요를 뭔가 기적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머리로는 그게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은 그것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의 믿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예수님의 시험을 통해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내가 구해야 할 것은 내 육체적, 경제적, 사회적 필요가 아닌 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이다. 교묘하게 포장하여 내 필요를 구하는 기도를 거룩한 척하지 말자.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내가 얼마나 나약한지 고백하고, 그런 나를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의와 영광이 드러날 수 있기를 기도하자. 그것이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순종일 터이니...

 

말씀을 인용하여 첫 번째 시험을 물리친 예수님에게 마귀는 시편 91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라 말한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시91:11~12)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한 예수님에게 마귀는 성경에 저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어디 한번 그 말씀(기록)이 사실인지 보여보라는 의미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하신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신6:16)

 

얼마나 많은 순간에 나는 하나님을 시험하려 드는지 모르겠다. "하나님,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하는 기도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때가 얼마나 많은지....하나님을 시험하려 들지 말고, 삶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달라고 구해야겠다.

 

두 번째 시험도 통하지 않자 마귀는 온 천하의 나라들과 영광을 보여주며 차라리 자신에게 절하라 말한다. 자신에게 절하면 당장 이 모든 나라들, 영광을 주겠다 말한다.

예수님은 이번에도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를 거절하신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신6:13)

마귀의 마지막 시험은 상당히 강력했다.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는 당장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며 이것이 '사실'이며 '현실'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 어찌 강력한 유혹이 아니겠는가?

많은 순교자들이 이러한 시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고 기꺼이 순교를 당했다. 당장의 부와 명예, 목숨과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이 사이에서 기꺼이 믿음을 선택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 나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당장 눈앞에 닥친 많은 어려움들. 그것들만 해결된다면.....그럼 하나님을 더 온전히 믿을 수 있을 텐데.....

 

고3 때, 재수를 하던 시절에, 새벽예배부터 주중 예배까지 모든 예배를 빠지지 않겠다 결심하고 실천할 때, 많은 '교회의 어른들'이 그건 믿음이 아니라 했다. 우선은 대학교에 들어가고, 취직을 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지 교회만 열심히 나왔다가 대학 떨어지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라 조언(?)하였다. 그 시절의 나는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오히려 더 악착같이 예배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던 내가 어느 순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눈앞의 '현실'에 더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 늘어난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가 늘고, 현실이 그렇다는 핑계가 늘고.... 어쩌면 나도 그 '교회 어른들' 중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의 우상은 바알도, 아세라도, 석가모니도 아니다.

오늘날의 가장 강력한 우상은 현실, 돈, 명예, 어쩔 수 없는 상황, 사회적 지위 등이 아닐런지...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그런 삶을 살도록 더욱 나를 단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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