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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마지막 선지자 요한 (마3:1~12)

by 멧풀다솜 2023.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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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3장 부터는 마가복음의 진술을 토대로 한다.
마가복음 1장1절~6절 까지의 진술과 오늘 본문 마태복음 3장의 진술의 차이점이라면 마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한 요한의 경고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광야’는 여리고 언덕 위 요단 골짜기를 말하는데 그곳은 요단강 바로 가까이만 식물이 자라는 황량한 골짜기이다. 이 광야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떠 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궁극적인 구원이 오리라는 희망을 일깨워준다. (호2:14~15)

역시나 마태는 이번에도 구약의 예언을 인용하여 세례요한을 설명한다. 이사야 40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요한이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외치는 광야의 ‘소리’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소리의 역할은 전달이다. 소리가 자기 주장을 하게 되면 온 세상이 각양 소리로 뒤섞여 난장판이 될 것이다. 소리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사라져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요한은 마치 이러한 ‘소리’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으며,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선지자를 보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낙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요한의 모습은 잊고 있던 선지자의 모습을 연상케 하였고, 어떤 이들은 그가 예언의 메시아라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요한은 자신을 향해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비하여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자일뿐 메시아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스스로 증거한 것이다.

당시 지도자 계급인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요한의 등장과 소문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또한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와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해 요한에게 나아갔다. 그런데 요한은 그들을 향해 맹렬한 비난을 쏟아낸다.

요한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한 비난은 그들의 정곡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었다. 그들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민의식에 찌들어 스스로 거룩한체 하는 가식을 지적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을 경고한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 다양한 선민의식들이 존재한다.
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 직분자, 신앙력, 성경지식 등 얼마나 많은 종교적 행위들로 자신들이 마치 거룩한 양 스스로도 착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다. 내가 요한이 비난하고 있는 바리새인이며, 사두개인이며, 유대인인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열매’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 죄의 값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다시는 같은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사는 삶이다. 그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 회개합니다’ 로 회개했다 말할 순 없는 것이다.

내 회개의 열매는 무엇일까?
하나 하나 나열하기에 너무도 많고 부끄러운 모습들. 그리고 그 모습들을 고치려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없는 모습.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혼자 하려는 모습들이 아닐까?

나 스스로 내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 교만이며 죄이다. 나는 나를 결코 변화시킬 수 없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으니,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의 모습을 보여야 하겠다.
내 삶의 부족한 모습들을 하나 하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바꾸도록 몸부림치며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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