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는 녹색어머니회, 학부모회 등 이런 저런 학부모 단체가 존재한다.
이런 단체가 자발적 단체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학교는 어쩔 수 없이 이런 학부모 단체들을 조직하여 운영하여야만 하고, 그러다보니 학부모 총회라 불리우는 학교 교육과정 설명회때 이런 단체를 조직하기 위해 몸살을 앓는다.
저학년 학부모들은 기쁜 마음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이런 조직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때론 학부모총회에 갔다가 마지 못해 떠 안는 경우도 생긴다.
문제는 고학년이다. 이런 생활이 매년 반복되다보면, 저학년 때 나름 의욕과 좋은 의도로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학부모들도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이제 그만 그 짐을 내려놓고 싶어한다.
학부모총회는 학교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안내를 받고, 담임교사로부터 학급 교육과정 운영 및 학급운영에 관한 철학을 설명듣고 필요하다면 의견을 제시하거나 질문을 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이다. 그래서 나는 매년 학부모 총회 참여를 독려한다.
하지만 대부분 고학년을 맡는 나로서는 이 날이 참으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학부모 조직은 자발적이어야 한다는 고집으로 철저하게 학부모 의견에 따르려 하고, 때론 학급임원 선거 이후 이루어지는 학부모총회 특성상 마지못해 등떠밀려 학급임원의 학부모가 학급대표, 녹색대표 등을 맡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학급임원 학부모는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올 해 우리반 학부모 총회는 30명 정원에 6분의 학부모가 오셨다. 5-6학년을 통틀어 가장 많이 오신 학급이 되었다. 워낙에 학부모 밴드 등으로 강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가장 하고 싶었던 학급 경영철학이나 학급경영관을 설명할 시간을 턱없이 부족하고, 교내 메신저로 선출된 임원을 보내달라는 독촉에 학급 학부모 대표를 선출하기에 급할 수 밖에 없다.
최대한 짐을 덜어드리고자, 녹색 활동 조직표를 짤 때에는 학부모 밴드를 통해 표를 만들어 올려놓고 댓글로 신청을 받아 빈 칸을 채운다.
학부모 밴드에 올린 녹색활동표다.
30명 정원인데 채워야 하는 칸은 32칸이다. 당연히 누군가는 중복으로 활동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여기에 맛벌이 가정을 포함하면 중복하여 수고하는 학부모의 부담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예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아이들의 등학교길 안전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화가 났다.
왜 아이들의 안전을 볼모로 학부모들의 수고를 강요하여야 하는가?
더군다나 의무교육이라고 하면서????
이건 불합리해도 한참 불합리하다.
그런데 매년 이렇게 학부모 밴드를 통해 녹색활동표를 조직하면 금방 채워진다. 하지만 위 표에서 굵게 표시한 붉은색 번호는 누군가가 2회 이상 중복하여 활동하는 칸이다.
국가 교육과정에 의해 의무교육으로 아이들을 교육한다면, 국가와 학교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닌가? 경찰 인력이 부족하다면 일용직을 고용해서라도 국가가 책임지고 아이들의 등하교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
마음은 중복활동은 하지 마시라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도 못한다. 아이들의 교통안전때문이다. 확률적으로야 만분의 일이라 할지라도 그 만분의 일이 내 아이라면 그건 백퍼센트다. 학교를 보내서 생기는 문제인 것이다. 그것도 의무교육기관에....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야 더없이 좋지만, 당장 나부터 불가능하다. 교사인 내가 내 아이들의 입학식과 졸업식에 참여하는 것은 정말 운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이고, 학부모총회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
이번 주 학부모 상담주간에 상담을 오신 아버지들을 보며 너무도 부러웠다.
나도 내 아이 학교의 학부모 상담주간에 상담을 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나도 내 아이가 몇반인지, 담임 선생님 이름은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학급을 운영하며 학교생활을 하는지 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알수가 없다.
나도 이럴진대 다른 아빠들은 오죽할까.
내가 학부모 밴드에 아빠들도 초대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가족을 위해 살고, 가족을 위해 일하는데 가족과 함께 할 시간도 부족하고, 자녀의 학교생활을 알기에도 힘들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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