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민원 유감
지난 주. 교장선생님이 다급하게 호출을 하셨다. 교장실에 내려가보니 학부모로부터 이의제기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내용인즉 성(性)적인 발언 내지는 행동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고, 종종 듣는 소리 중 하나인지라 차분하게 어떻게 학급을 운영하였고, 그 과정에서 오해(?)의 소지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설명드렸다. 그리고 충분히 민원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였다.
큰일이라도 난 것 처럼 걱정하시던 교장선생님의 표정은 다소 안심하는 듯 하였지만, 그래도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절차대로 교육청에 보고하고, 자치기구를 통해 사안조사를 하여야 한다 말씀하시기에 나 역시도 그것이 당연하다 말씀드렸다.
나는 학생들과 권위적인 교사의 모습이기 보다는 친구같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교사이고 싶었다. 그것이 지금껏 초임부터 지켜온 내 교직 철학중 하나였고, 아이들과의 래포(rapport) 형성을 위한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가 몸으로 부대끼며 노는 것과 아이돌 그룹 팬 들의 소위 '덕질'을 이해하고 응원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학년을 맡다보면, 나 역시도 딸을 키우는 입장인지라 학부모들이나 학생들의 입장에서 그러한 교사의 모습이 다소 부담스럽거나 불편할 수 있다. 그래서 학부모총회, 학부모 밴드, 그리고 학부모 상담 등을 통해 꾸준히 결코 과하게 예민하게 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다면 언제든 주저 없이 이야기하라 당부하곤 해 왔다.
하지만 그렇다 할 지라도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 담임교사의 언행에 대해 불편함이 있을 때 그것을 기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특히나 여학생들의 학부모와 상담을 하게 될 때면 반드시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고 불편함은 없는지, 혹여라도 불편해한다면 이야기 해 달라 부탁하곤 했고, 아이들에게도 틈이 날 때 마다 이야기 해 왔다.
또한 그럼으로써 아이들에게 아무리 의도가 나쁘지 않고, 장난일지라도 상대방이 불쾌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명백한 폭력이며, 상대방의 거부의사를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체험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학부모의 다소 황당한(?) 민원이지만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었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나의 태도에대해 생활부장 선생님은 다소 염려하였으나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이런 사안은 무엇보다 '팩트'가 중요하다.
비록 민원을 제기한 학생의 경우 본인은 거부의사를 표시했고, 그래서 선생님이 자기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한다.
그것은 명백한 나의 실수이기도 하다.
나는 명확하게 나에게 거부의사나 불편함을 표시하는 학생에게는 당연히 장난을 거는 수위를 그에 맞게 조정한다. 그 뿐 아니라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표정으로 보아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 보이면 해당 학생에게 역시 장난의 수위를 조정해 왔다.
그런데 내가 놓친 것은 비록 본인이 당하진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비록 해당 학생은 그것을 웃으며 받아주고 있지만-당하고 있는 것도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내가 물놀이를 대할때의 태도와 같다.
나는 물놀이 때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물에 빠뜨리는 장난을 극도로 싫어한다. 나에게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노는 모습을 보는 것 조차 싫어한다.
그렇기에 보인은 싫다고 해서 선생님이 장난을 걸지 않지만, 다른 아이에게 그렇게 하는게 싫다고 말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심정이 그와 같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다만, 내가 유감인것은 평소 학생, 학부모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학급경영을 하려고 나름 노력해 왔으나, 차마 나에게 말하지 못하고 다른 경로로 말했다는 것이다. 그정도의 신뢰를 내가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편으론 해당 학부모에게 서운하고, 무엇보다 나에게 실망이 컸다.
내가 너무 교만했다.
나정도면 학부모들이 거리낌 없이 불편함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
아무리 말하라 해도 말하기 부담스럽고 어려워하는 학부모와 학생이 있을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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