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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지극히 작은자에게 (마 25:31~46)

by 멧풀다솜 2019.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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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자에게

(마 25:31~46)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 사람들을 의인과 죄인으로 구분하신다.

 양과 염소로 비유를 하시지만 비유치고는 매우 직설적인 화법으로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은 의인을 향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가 되었을 때 영접하고, 헐벗을 때 옷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 돌보고 감옥에 갇혔을 때 문안하였다 칭찬하신다.


 의인들은 대답하기를 언제 그랬냐고 대답하지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하나님께 한 것이라 말씀하신다.


 반대로 죄인들에게도 갇은 기준을 적용하시며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질책하시고, 죄인들은 그런적이 없다 대답한다. 하지만 역시나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돌보지 않은 것이 하나님을 외면한 것이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사람을 향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계명 가운데 가장 큰 계명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살리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살리는 것과 같다.


 명심보감 계선편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공자가 말하길, 착한일을 하는 자에게 하늘이 복으로 갚고, 착한일을 하지 않는 자에게 하늘이 화로써 갚는다.


 철모르던 국민학교 시절에 남들 앞에서 잘난척 하기 좋아 명심보감을 외웠는데(^^;) 첫 구절인 저 구절을 보고 나름 놀랐었다. 착한일에 복을 받는 것은 알겠으나 악한일에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착한일을 하지 않은 것에 저주를 받는 것이라니....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돌보지 않은 것이 하나님을 돌보지 않은 것이라 말씀하신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존귀한 존재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학교에서 가끔 아이들을 놀려먹기 위해 아이돌 가수의 노랫말을 캘리로써서 다트 과녁판에 붙여 놓으면, 해당 아이돌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다트를 던지지 못하게 막으려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이름이나 노랫말 조차도 팬 에게는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며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 죄다.

 하나님을 닮아 지음받은 사람을 어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학급의 아이들, 가족들, 이웃들, 모두가 하나님이며 예수님이다. 하나님을 섬기듯 사람을 섬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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