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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날적이

토론문화에 대해 생각하다

by 멧풀다솜 2016.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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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론을 좋아한다.

토론은 debate 다.

언어로 하는 전쟁이되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전쟁이다.

 

민주주의는 비 효율적이며 더디지만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토론과 토의에 있다.

 

 

오늘 학교에서 "교육 공동체 대 토론회"가 열렸다.

몇 해 전 내 담당 업무였던지라 당시 토론을 기획하고 사회를 보았던 나는,

올해의 대토론회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다.

 

'이렇게 하면 참 좋을텐데...' 하는 생각은 있으되, 내 담당 업무가 아닌지라,

담당 선생님에게 짐이 될까 싶어 말을 아꼈지만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토론은 말로 첨예하게 싸우는 대립이다.

극명하게 갈리는 두 의견을 가지고 객관적 근거와 논리로 싸우는 싸움이 토론이다.

하지만 토론에서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다.

토론을 하는 동안 서로가 잡아먹을듯 싸우지만 근거와 논리로 싸우기 때문에 감정적 대립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토론이 힘을 가지는 이유는 그렇게 첨예하게 대립하여 싸우지만,

싸움이 끝난 뒤 서로가 웃으며 손을 맞잡고 함께 일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힘은 이렇게 나타난다.

토의와 토론을 통해 도출된 결론이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의와 토론을 통해 도출된 결론이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구성원들은 토의와 토론을 기피하는 문화가 형성되어버린다.

 

그래서 토론 주제를 선정하는 것 부터가 참으로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그 고민 끝에는 언제나 결론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학교에서 교직원회의가 즐거울때가 있고,

회의 내내 딴생각만 할 때가 있다.

즐거운 경우는 회의를 통해 도출된 결론들이 적용되는 비율이 높을 때이다.

딴생각만 하고 빨리 끝내고 싶은 경우는 아무리 떠들어 봐야 결국은 답을 누군가가 가지고 있고, 그 답대로 가는 과정에 회의를 형식적으로 끼워 넣었을 경우이다.

 

바람직한 공동체는,

비판 뿐 아니라 비난도 함께 공존하지만 그 공동체가 깨어지지 않는 공동체이다.

 

가장 이상적 공동체는 그래서 가정이다.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부부는 서로를 비난하기도 하고 마음에 안들어 하기도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최후의 내 편이 되어주는 이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비난, 비판이 생겨나지만,

그것이 결코 공동체를 깨지 못하는 이유는 그 비난과 비판을 그대로 받기 때문이다.

 

몇해 전 학교에서 전교 어린이회를 담당하면서,

아이들의 회의 결과를 교장, 교감 선생님에게 결재 받아가며 조회시간에 학교 방송을 통해 알린적이 있다.

 

그당시 교장 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은,

전교 어린이회에서 운동장에 시계탑을 설치해 달라는 어린이회의 의견에 대해 예산이 부족하고 시계탑 설치에 드는 비용에 대해 설명하면서 대책을 마련해 보겠다 약속하였고 결국 대형 벽시계를 운동장에서 잘 보이는 창가에 양면테잎을 이용해 붙여 주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것을 좋아했다.

이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니 전교회의에 오는 아이들은 자부심을 느끼며 회의에 참여하였다.

 

이것이 진짜 토론이고 민주주의며, 공동체인 것이다.

회의는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것인지,

혹은 회의 결과가 아무리 기다려도 현실화 되지 않을 때,

회의는 그저 독점적 권력을 가진이의 자기합리화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 나는 독점적 권력(?)과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토의와 토론을 제대로 가르쳐 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가르치려는 생각 자체가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가르치려기 보다 듣고, 대답하고, 이해하고, 설명하려 해야 한다.

 

하~

진짜 잘, 제대로, 똑바로, 가르쳐서 키워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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