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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시119:49~64)

by 멧풀다솜 2019.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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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중에 있는 사람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

 신세를 한탄하거나,

 성공한 사람들을 롤모델 삼아 그들의 방식대로 성공해 보려고 몸부림치거나,

 좌절하거나, 절망하거나....

 혹은 언젠가는 나아지겠거니 하며 하루 하루를 견디며 죽지 못해 살아갈 수도 있겠다.

 

 시인은 고난중에 소망을 가지고 견디는 삶을 선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소망의 근원은 '언젠가 나아지겠지"하는 막연한 기대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함이며, 특별히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다. (49-50)

 

 다른 사람들이 그것이 미련한 방법이며, 그렇게 살아서는 소망이 없다 조롱하여도(51) 시인은 말씀에 의지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위로를 얻고 있다. (52)

 

 법도(미쉬파트-mishpat)는 하나님의 법이며, 규례(호크-choq)와 율례는 세부시행령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세부 시행규칙을 통해 하나 하나 자신의 삶에 체화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위로를 얻고 소망을 얻으며, 하나님을 자신의 분깃으로 삼는다.(57)

 

 '밤'은 고난이며, 아무도 보지 않는 은밀함이며, 어둠이 힘을 얻는 시간이다.

 시인은 이러한 밤에 홀로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며(55), 밤의 어둠이 자신을 에워싸도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았고(61), 어둠 가운데서도 일어나 하나님께 말씀으로 인하여 감사하며(63),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고 찬양한다(64a). 

 

 시인의 이러한 '밤의 경험'은 드라마틱하고 강렬한 감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더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간구로 이어진다(64b).

 

 나에게도 시인과 같은 '밤의 경험'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의 '밤의 경험'은 그저 '예전의 감동'에 머무르고, 나를 둘러싼 밤의 어둠에 어쩔 수 없다며 자조섞인 목소리로 그저 막연하게 하나님의 기적적이고도 드라마틱한 도우심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로는 늘 알고 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홀로 기적적으로 움직이지 않으심을...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내가 늘 강조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것을 다 한 후에 도움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기도라 가르쳤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시도하려 하지 않고 늘어져 있다.

 시작은 말씀의 끈을 놓지 않고, 말씀 가운데서 위로를 얻으며, 말씀으로 구체적인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규례들을 찾아 실천하는 것 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일단은 내어딛고, 더디고 미련해 보일지라도 한걸음 내어딛고, 내 길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기를 기도하며, 내 발에 하나님의 힘을 더하여 주시기를 기도하며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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