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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마5:21~32)

by 멧풀다솜 2023.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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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의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보다 나아야 한다 가르치신 예수님은 구체적 사례를 들어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설명 방식은 유대인의 랍비 약식에 따라 십계명을 인용하여 덧붙여 설명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율법을 하나라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신 대로 유대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모세의 율법'을 보다 더 엄중한 기준으로 강조하고 계신다.

 

예수님이 모세의 계명을 인용하며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율법의 핵심인 '사랑'이다.

모든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맞춰져 있었으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의 문구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예수님은 율법의 본질을 꿰뚫는 가르침을 말씀하고 계신다.

 

살인=형제를 미워하는 죄

살인하지 말라고 한 것은 사람을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만큼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형상을 소중히 여기라는 의미이다. 살인을 하지 않았으나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곧 살인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를 말씀하신다.

형제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도 심판을 받을 것이며(다른 사본에서는 '이유 없이 노하는 자마다'로 되어 있기도 하다), 형제를 향해 골빈놈(아람어 '라가'는 히브리 욕설로 '머리가 없는', '멍청한'의 뜻으로 사용된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공회에서 재판해야 할 것이고, 미련한 놈이라 말하는 사람도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예수님은 보다 넓은 의미로 확대하여 형제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 것과 동일하게 설명하고 있다.

 

예배보다 화목

구약에서의 모든 예배는 본질적으로 '화목제'의 성격을 지닌다. 속죄제이든, 속건제이든, 본질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죄를 멸하고 거룩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다. 때문에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을 드리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과 화목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말씀하신다. 사람과 화목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체와 마음 모두에 적용되는 간음

이어 예수님은 간음에 관하여도 음욕을 품고 성적 대상으로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한 것이라 말씀하신다.

간음은 율법에서 가장 무겁게 다루는 죄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면서 맺은 혼인관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상숭배의 죄는 종종 '간음' 또는 '행음' 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간음한 여인은 진 밖으로 내몰아 돌로 쳐 죽이는 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음에 성욕을 품고서 여자를 바라보는 것도 이미 간음이라 규정하고 계신다. 그렇기에 신명기에 아내를 버리려는 남편은 이혼증서를 주어 이혼하게 한 율법의 본질을 다시 해석해 주신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신24:1)

율법에는 분명하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라는 단서 조항이 있었으나 유대인들은 이혼증서를 주기만 하면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 생각했다. 때문에 예수님은 보다 명확하게 '음행 한 이유 없이'라는 단서조항을 다셨다. 다시 말해 음행 이외에는 어떠한 이유로든 아내를 버릴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그렇게 이혼당한 여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것도 간음에 해당하기 때문이라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이 말씀 역시 율법과 동일하다.

전남편이 그를 다시 아내로 맞이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신24:4)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그에게서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남편이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아니하겠느냐 (렘3:1)

 

실족하게 하는 육체를 버리라

예수님의 기준은 참으로 가혹하고 불가능해 보인다. 예수님은 한 발 더 나아가 눈 때문에 실족할 것 같으면(죄를 지을 것 같으면) 차라리 눈을 빼버리고, 손 때문에 죄를 지을 것 같으면 찍어서 내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음행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도 죄라 말씀하셨으니 눈으로도 죄를 지을 수 있고, 생각으로도 죄를 지을 수 있다. 과연 남아날 육체가 있을까?

 

누구도 스스로 의롭다 할 수 없다

결국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누구도 스스로 의롭다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 율법을 지키는 것 만으로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 그리고 그들보다 더 나은 의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율법을 지키기만 할 것이 아니라 율법이 말하는 본질을 바라보고 그에 합당한 삶을 요구하시는 예수님. 누가 이렇게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바울은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하면서 오직 예수님만이 자신을 건져주실 수 있고, 그로 인해 감사하다 고백한 것이 아닐런지...(롬7:14~25)

 

나의 속 중심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나의 몸의 여러 부분들에서는 다른 법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내 몸에서 작용하고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나는 참으로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해 내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반면, 죄악 된 본성으로는 죄의 법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롬7:22~25. 쉬운성경)

 

바울의 이러한 탄식은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더 나은 의'가 무엇인지 깨달은 데서 나온 것이다.

나에게 이러한 탄식이 있었던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 하는 애통함, 가난함, 굶주림이 있었던가?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과 화목하려고 하는가?

"에이~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이라고 했어" 하면서 스스로 자기변명을 하기도 하고,

"누구나 다 죄인이야.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신 것이지" 하면서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그저 나 좋은 핑곗거리로 삼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와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정죄하고, 분노하고... 그것으로 마치 나는 그들과 다른 의로운 사람인양 행세하는 내 모습.

 

오늘도 역시 묵상을 괜히 했다는 생각이다 ㅠㅠ

도대체 어찌 이런 높은 기준을 따라갈 수 있을까? 아니, 따라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바울 같은 탄식은 나와야 하건만 내가 정말 믿는 사람이긴 한 걸까?

이젠 말씀을 대하는 것이 두렵고, 묵상을 하는 것이 버겁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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