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QT)

목적, 방법, 결과 (대상 15:1~29)

by 멧풀다솜 2019. 5. 13.
728x90



목적, 방법, 결과

(대상 15:1~29)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

 목적이 좋지만 방법이 적절하지 않다면? 반대로 목적은 별로지만 방법이 적절하다면?

 

 당연하게도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둘 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방법을 더 생각하는 편이다.


 아이들에게 예절에 대해 가르칠 때, 나는 그렇게 가르친다. 선생님이 그닥 좋지 않아도 선생님이니까 예의를 갖추어 대하라고. 뒤에서 욕을 하던 말던, 최소한 앞에서는 선생님을 대하는 학생의 자세를 갖추라 말한다.


 오래전에 이문제 가지고 동료 선생님과 가볍게 논쟁한 적이 있다. 그 선생님은 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의가 진짜라는 것이다.


 당연하다.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은 것은 가식이고 거짓이다. 그러나 예의는 마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그릇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대서는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에게 여전히 하나님은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언약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기록이다.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다윗을 통해, 솔로몬의 성전을 두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 아브라함을 통해 하신 하나님의 언약,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은 여전히 유효한가?


 오랜 포로생활끝에 돌아왔으나 여전히 페르시아의 영향 아래에 있으며, 성전은 파괴되었고, 남은자도 적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언약이 여전히 유효하다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역대서는 족보를 통해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임을 보여주며, 다윗의 행적을 통해 포로에서 돌아온 상황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왕권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다윗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바랬고, 그래서 다윗성에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고자 했다. 무려 3만에 달하는 엄청난 퍼레이드를 통해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고자 했다.


 다윗이 잘못했는가? 다윗의 의도가 잘못되었는가?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하나님의 궤는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다윗은 깨달았다.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다윗은 정확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하나님의 궤를 다시 다윗성으로 옮겨오는 시도를 하였고, 이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온 백성은 하나님의 궤가 돌아오는 것이 대해 기뻐했고, 온 나라의 축제에 빠졌으며 다윗은 기뻐 춤을 추었다.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려는 다윗의 의도는 옳다. 그러나 첫번째 방법은 다윗의 방법이었다. 그래서 실패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옮길 때에야 성공할 수 있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에게 시급한 문제는 마을을 다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하나님이 다스리는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신앙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것이다. 이제 막 성전도 재건했고, 얼른 하나님께 예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다 보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자신들의 방법으로 하기 쉽다.


 역대서 기자는 이를 다윗의 일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율법대로 하지 않았음이 문제였던 것임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것이다.


 여전히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고,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을 처리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4월 한달을 매우 민감한 문제로 힘들게 보냈다.

 하루 하루 유혹에 빠졌다. 내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볼까? 절차를 지키는 것이 과연 중요할까? 하지만 최대한 절차를 지키되 그 절차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자 했다. 그래서 힘들었다.


 절차만 지키려면 조금 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절차를 무시하고 내가 내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덜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차는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결국 결론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숙제를 남긴 채 선하게 일단락 되었다.


 목적(의도)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지만, 그렇다하여 수단만을 강조해서도, 목적만을 강조해서도 안된다. 목적과 수단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래서 어렵지만, 그렇기에 더욱 힘을 내어야 하고, 기도하며 한걸음씩 나가야한다.



 

728x90

'묵상(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전건축의 준비 (대상 22:1~19)  (0) 2019.05.23
다윗의 범죄 (대상 21:1~17)  (0) 2019.05.21
첫날밤 (아 4:1~5:1)  (0) 2019.04.25
봄날의 사랑 (아 2:8~17)  (0) 2019.04.22
나의 사랑하는 자야 (아 1:1~2:7)  (0) 2019.04.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