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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생각

복음과 코로나

by 멧풀다솜 2020.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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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제국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로마 통치하에 이스라엘의 식민지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은 남달랐다.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부르며, 다시 한번 옛 솔로몬의 영광이 일어나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들의 이러한 믿음은 그들의 경전에 기록된 예언 때문이었다. 로마의 지배가 강화될수록 이스라엘은 예언의 메시아를 기다렸다.

 

 어느 날, 메시아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은 그 사람을 직접 보기 위해 몰려갔다. 강가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며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과 같은 최고의 종교 지도자에게 거침없이 "독사의 자식들"이라 독설을 내뱉으며 책망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스스로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였다. 자기는 메시아가 올 것을 예비하는 사람일 뿐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적잖이 실망했으나 어떤 이는 여전히 그를 메시아로 믿었고, 어떤 이는 다시 올 메시아를 기다렸다.

 

 또다시 메시아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번에는 전에 소문이 돌았던, 결국은 어린 계집아이의 생일선물로 목이 잘려 은쟁반에 머리가 올려졌던 요한과 달랐다. 병든 자를 고치고, 눈먼 자도 눈을 뜨게 하고, 문둥병자도 낫게 하는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하였다. 드디어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메시아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메시아, 무언가 이상했다.

 로마에 빌붙어 동족에게 세금을 갈취해 가던 세리의 집에서 그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역시나 그 어떠한 정치적 행동도, 선동도 없었다. 가르침은 이상하기만 하였다. 늘 들었던 뻔한 가르침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란다. 남이 뺨을 때리면 다른 쪽 뺨도 내어 주란다. 그건 경전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온 이야기다. 새로울게 전혀 없다.

 

 사람들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가르침을 들으러 온 오천명을 먹이고, 눈먼 자를 고치고 절름발이가 뛰어다니게 하고, 창녀를 용서하고 가난한 자들과 친구가 되는 그런 메시아를 기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하나님의 권능이든 뭐든, 강력한 힘으로 로마 정권을 무너뜨리고 다시금 예 이스라엘-솔로몬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무력한 메시아는 결국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을 당하고 말았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심어주고자 했던 '복음'은 무엇이었을까?

 악한 정권의 퇴진이나 새로운 정권의 탄생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시선은 가난한 자, 아픈 사람,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머물러 있었다.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아브라함을 통해 '복의 근원'을 삼고자 하셨던 그 인간들을 다시금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님을 보냈으나, 정작 사람들은 '복의 근원'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었다.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은 하나님의 뜻은, 아브라함을 선대 하는 자에게 복을 주고, 아브라함을 핍박하는 자를 멸하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복을 입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천하 모든 만민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는 축복의 통로로 삼으심이었다.

 

 교회 발 코로나로 인해 한국 교회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소수라고 말하기엔 교회가 그간 보여왔던 행태는 예수님 시대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 혹은 메시아를 기다리던 군중들과 다르지 않았다. 교회가 사람들의 복의 근원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통해 복을 얻으려 하였다.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고, 약한 자들의 친구가 되고, 핍박받고 혐오받는 자들의 친구가 되어야 할 교회는 혐오의 중심에 서 있었고, 어느새 정치적인 세력을 불리기에 바빴고, 근사하게 정장을 차려입을 사람들의 잔치에 바빴다.

 

 이 시대 예수님이 계셨다면 어디에 계셨을까? 아마도 대구에, 이태원에 계시지 않았을까?

 교회는 코로나가 급속도로 확산될 때에 무엇을 하였는가? 선제적으로 방역에 동참하고, 집합 예배보다는 일상 예배로의 전환을 통해 삶을 통한 예배를 가르치고, 병상이 부족할 때 기꺼이 교회 시설을 내어주었는가? 사람들에게 방역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방역 당국과 협조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한 사람이라도 더 검진을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 아니었던가?

 

 코로나 시대에 복음에 대해, 복의 근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며, 교회 다닌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린 요즘이지만, 그래도 이 기회에 한국 교회가 복음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엄청나게 큰(?)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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