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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10:16~23)

by 멧풀다솜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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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부와 함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하게 될 핍박에 대해 말씀하신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영광의 길도 아니다. 매우 험난하고 고단한 길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는 심정을 마치 이리떼 가운데에 양을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이리떼 가운데서 양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신다. 그러면서 당부하신다. 그러니 뱀처럼 지혜롭게 처신하며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뱀? 갑자기? 유대인들에게 뱀은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태초에 하와를 꼬드겨 하나님을 떠나게 한 것도 뱀이며, 많은 예언서에서 뱀은 하나님과 대적하는 동물, 마귀로 상징된다. 또한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을 당시의 유대인들은 새끼 뱀이 어미를 잡아먹고 나오는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뱀은 부모를 잡아먹는 동물, 배반과 패역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뱀이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대사회에서 지혜는 '말' 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라 여겼다. 뱀의 혀는 실제로는 한 개이고 그 끝이 갈라져 있는 것이지만 유대인들이 보았을 때 뱀은 혀가 두 개인 동물로 보였고, 혀는 곧 말을 상징하기에 뱀은 모든 동물들 가운데서 가장 지혜로운 동물로 여기기도 하였다.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창3:1a)

 여기에서 '간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아룸'은 '교활한'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지혜'를 나타내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된다. 70인역 성경에서는 이 '아룸'을 헬라어 '프로니모타토스'로 번역하였는데 본문의 '뱀 같이 지혜롭고'에서 '지혜'에 사용된 헬라어는 '프로니모스'로 히브리어 '아룸'과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19~20절)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리'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전파하는 제자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제자들을 공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고(17절),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고 가 재판을 할 것이다. (18절)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당부에 이어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박해를 받고 재판에 넘겨지게 될 때에 할 말을 걱정하지 말고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말하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은 비둘기 같이 순결한 마음으로 성령의 인도를 따르고, 재판에 넘겨질 때에 어떻게 말할까를 이리저리 궁리하여 유리하게 말하려 하기보다는 뱀의 혀(지혜)와 같이 성령님의 이끄심대로 올곧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하여 비록 제자들은 모진 시련을 겪게 되겠으나 결과적으로 재판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증거가 전파될게 될 것이다. (18절 b)

 

 복음을 전하게 됨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되겠지만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전함으로 견디면 결국에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니 (22절), 박해를 피해 많은 동네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 보면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오해를 당하고 모함을 당할 때, 때론 침묵이 큰 힘을 발휘하거나 불리해 보일지라도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그럴듯하게 말을 만들어 하게 되면 당장은 위기를 넘길 수 있겠으나 그것이 결국은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나를 찌르는 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일인가.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으나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이러한 모진 시련과 핍박을 감내하여야 한다. 나의 잘못과 실수로 일어나는 고통은 내 탓이겠으나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구원의 여정이다.

 

 나에게 복음은 어떤 의미이며, 어떤 삶의 자세를 만들고 있는가?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드러내지 않으려 하거나 혹은 에둘러 표현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 복음은 부끄러운 것인가? 복음을 대하는 내 자세를 다시 돌아보고, 비둘기 같은 순결함과 뱀과 같은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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