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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야곱과 라반의 언약 (창 31:36~55)

by 멧풀다솜 2020.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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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라반의 언약

(창 31:36~55)

 

 라반이 야곱 일행의 짐을 다 뒤져도 드라빔을 발견하지 못하자 야곱이 화를 내며 라반에게 말한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장인어른이 득달같이 저를 쫒아오셨습니까?

 제 물건들을 모두 뒤졌는데 장인어른의 물건이 하나라도 나온 것이 있습니까? 있으면 꺼내보십시요.

 저는 장인어른을 위해 20년을 일했고, 일하면서 단 하나도 장인어른의 재산에 손을 댄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양 한마리가 들짐승에게 잡아 먹히는 일이 있으면 제 양으로 그것을 갚았고, 혹여 도망간 짐승이 있어도 제 양으로 채워 놓았습니다.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와 싸워가며 지난 20년을 종처럼 일했습니다.

 처음 14년을 장인어른의 두 딸을 위해 일했고, 다음 6년을 제 가축을 얻기 위해 일했지만, 장인어른은 제 품삯을 열번이나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제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저는 빈 손으로 고향에 돌아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제 밤 외삼촌에게 말씀하신 것은 제 수고와 성실함을 알고 갚아주신 것입니다.

 

 야곱의 이 말에 라반은 참으로 황당한 말을 한다.

 

 자네의 두 아내는 내 딸이요, 자네 아이들은 내 손자들일세.

 자네 가축들도 그렇고 자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내것이었네.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내 딸들과 손자들에게 무슨일을 할 수 있겠나?

 여기 돌무더기를 쌓아 자네와 나 사이의 증거로 삼도록 하세나.

 

 라반은 마치 큰 아량으로 야곱을 용서하듯, 큰 선심을 쓰듯 말한다.

 20년동안 품삯을 열번이나 바꿔가며 야곱의 재산이 불어나는 것을 경계했으면서도, 야곱의 항변을 들었으면서도, 야곱의 모든 것이 원래 자기 것이지만 자기 딸들과 손자들을 위해 봐준다는 식의 황당한 말을 늘어놓는다.

 

 어쨋든 라반과 야곱 사이의 분쟁은 이렇게 일단락이 된다.

 야곱과 라반은 돌무더기를 쌓아 언약의 증거로 삼고 그곳을 라반은 '여갈사하두다' 라 이름붙였고, 야곱은 히브리말 '갈르엣'이라 이름붙였다.

 

 라반이 말한다.

  "이 돌무더기가 우리가 맺은 약속의 증거일세"

 

 이곳의 다른 이름은 '미스바'가 되는데 이는 라반이 돌무더기를 쌓고 한 약속의 말 때문이다.

 라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헤어져 있는 동안에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시길 바라네,

 만일 자네가 내 딸들을 괴롭게 하거나, 다른 아내를 얻거나 한다면, 하나님이 자네와 나 사이의 증인이 되실 것이네.

 이 돌무더기와 기둥이 자네와 나 사이의 증거가 되니 나는 결코 이 돌무더기를 넘어서서 자네를 해치지 않을 것일세,

 그러니 자네도 이 돌기둥을 넘어서 나를 해치지 말아야 할 것이야.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분들 조상의 하나님께서 우리 사이에 판단하실 것일세

 

 야곱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라반과 약속을 맺고, 산으로 가서 짐승 한 마리를 잡아 제물로 바친 뒤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산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이튿날 아침, 라반은 자신의 손주들과 딸들에게 입을 맞추며 축복한 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야곱의 생애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셨지만, 크게 세번에 걸쳐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키셨다.

 첫째는 야곱이 집을 나설 때 벧엘에서 항상 함께하시겠다 약속하시고 축복하심으로 야곱의 앞으로의 험난한 여정을 축복의 여정으로 바꾸셨으며,

 두번째는 야곱을 잡기 위해 추격한 라반이 오히려 돌 기둥을 세워 서로 해치지 않기로 약속하고 축복으로 야곱의 일행을 돌려보내도록 하셨다.

 마지막으로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야곱을 죽이기 위해 나선 에서가 오히려 야곱을 환대하며 환영하는 것으로 개입하셨다.

 

 하나님의 개입은 극적이지만, 그만큼 야곱의 처지가 절박할 때 이다.

 광야에서 아무 것도 없고, 아무도 없이 철저히 혼자 배개조차 없어 돌을 배게 누워있는 상황에서 야곱의 앞길을 축복하셨으며,

 많은 식구들과 가축들 때문에 빠르게 도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맹렬하게 추격하는 라반과 상호불가침의 조약을 맺게 하셨다.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지만, 야곱과 같은 상황은 바라지 않는다.

 다윗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만, 다윗처럼 믿었던 신하와 자녀들에게 배신당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경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만사형통케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는데, 과정은 무시한 채 결과만을 바라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고 있는 것이 맞는가?

 어쩌면 내가 바라는 복은 아침마다 정한수를 떠 놓고 치성을 드리던 옛 조상들의 모습과 같지는 않은가?

 

 내 삶에 충실하자,

 내게 주어진 환경에 충실하자,

 모든 상황에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고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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