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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시므온과 레위의 복수 (창 34:18~31)

by 멧풀다솜 2020.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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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므온과 레위의 복수

(창 34:18~31)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과는 혼인을 할 수 없다 말하는 시므온과 레위의 제안에 세겜과 하몰은 이 조건이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세겜은 디나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고, 야곱은 꽤 부유한 사람이었다. 세겜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꽤나 괜찮다 생각하여 세겜의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다.

 할례를 받고 3일 째 되는 날, 극심한 고통속에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때에 시므온과 레위는 칼을 들고 세겜을 공격한다.

 

 시므온과 레위의 복수는 잔인했다.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세겜 성 안의 모든 재물들을 약탈하였다. 그 뿐 아니라 세겜의 여자들과 아이들까지도 빼앗았다.

 

 야곱이 이 사실을 알고는 아들들을 책망한다.

 "어찌 이렇게 어리석으냐? 이제 이 땅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이 우리를 적대시하게 될 것이다.

  그들에 비해 우리의 수가 적으니 그들이 힘을 합쳐 우리를 공격한다면 우리 집안이 멸망하게 될 것을 어찌 생각지 않았느냐!"

 

 그런데 시므온과 레위는 오히려 그런 아버지에게 항변한다.

 "그들이 우리 누이를 창년취급했는데, 그럼 그걸 가만히 보고 있어야 옳았습니까?"

 

 시므온과 레위의 이 말은 얼핏 그럴듯 해 보인다.

 자신의 여동생을 강간한 것을 어찌 그냥 두고 보냐는 시므온과 레위는 정당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은 되는 듯 싶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디나의 일로 인해 일어난 복수인가 하는 부분이다.

 

 디나의 일로 인한 복수였다면, 세겜과 하몰을 죽이는 것을 충분하지 않았는가?

 혹여 분노가 커 기어이 세겜 사람들을 다 죽여야 했다면, 세겜이 디나를 취하듯 세겜의 여자들은 왜 취했을까?

 세겜의 재물들은 왜 빼앗았을까?

 결과로 보자면, 디나의 복수는 원인이었으나 침략과 약탈, 노략질에 불과했던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도, 그럴듯한 말로, 그럴듯한 핑계로 내 삶을 포장하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나는 시므온과 레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필요할 때 내 속의 탐심과 욕망은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여 마치 의를 행하는 양, 어쩔 수 없었다는 듯 말하고 생각하지 않던가?

 

 시므온과 레위는 또한 할례를 이용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거룩한 약속의 증거 할례를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꽤나 거룩한 듯 말했으나, 꽤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듯 말하고 있지만, 그 할례를 요구하는 시므온과 레위에게 하나님과의 언약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복수를 위한 좋은 핑계거리에 불과하였다.

 

 말씀을 묵상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삶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가장 쉽게 범하는 오류가 아니던가?

 내 삶을 말씀으로 조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말씀을 내 삶에 조명하여 말씀 속에서 내 삶을 합리화 하려는 시도가 어찌 그리도 많은지...

 

 야곱의 태도 또한 심상치 않다.

 아니, 애초에 세겜에 정착한 것 부터가 문제가 있었다.

 야곱은 라반의 집으로 도망할 때 분명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돌아오기까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라반의 집을 떠난 야곱에게도 얍복강 나루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 언약에 기대어 자신에게 축복해 주실 것을 씨름하며 간청하였다.

 그런 야곱에 벧엘이 아닌 세겜에 정착한다. 아예 돈을 주고 땅을 사서 눌러 앉을 생각을 한다.

 야곱은 벧엘로 갈 생각이 아예 없어진 것이다.

 또한 디나의 안부를 묻지도 않고 자신의 안위를 걱정한다.

 아들들의 폭력에 대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합당치 않음을 지적하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이만하면 되었다.

 이쯤 했으면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말과 생각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본문이다.

 야곱의 '아~ 이제 살았다' 하는 태도는 아들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전히 가르치지 못했고,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라는 시므온과 레위의 태도는 잔인한 폭력과 약탈을 불러일으켰다.

 

 조심, 또 조심하며 말씀을 대해야 한다.

 내 삶에 야곱과 같은, 시므온과 레위와 같은 행동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 한걸음 한걸음 내딛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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