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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

다시 벧엘로 (창 35:1~21)

by 멧풀다솜 2020.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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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벧엘로

(창 35:1~22)

 

 세겜에서의 참사가 있고나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벧엘로 가서 거기 살아라. 네가 형 에서를 피해 도망치던 때, 그곳에서 나를 만났던 곳. 그곳에 제단을 쌓아라"

 

 야곱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

 형 에서를 피해 도망치던 그 때, 하나님이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약속하셨던 그곳, 자신이 스스로 '벧엘'이라 이름붙였던 그곳.

 라반과 에서의 위협이 살아지자 자기는 그저 안주할 만한 세겜에서 돈을 주고 땅을 사 아예 정착할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야곱은 가족들을 모두 모아 말한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다른 신상들을 다 버려라. 몸을 정결하게 하고 옷을 갈아입어라. 벧엘로 갈 것이다. 그곳에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할 것이다. 내가 어려울 때, 내가 어디를 가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예배할 것이다."

 

 야곱의 식구들은 야곱의 말을 듣고 모든 장신구들과 신상들을 주었고, 야곱은 그것을 세겜성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파 묻었다. 그리고 드디어 벧엘로 떠난다.

 세겜에서의 일이 있었으나, 주변 다른 부족들은 하나님으로 인해 야곱을 추격하지 못하였다.

 야곱은 드디어 가나안 벧엘에 도착하였다. 그곳의 이름은 루스 이지만, 야곱은 그곳을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던 때에 자기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을 기념하며 벧엘이라 불렀었다.

 벧엘에 도착한 야곱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곳의 이름을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의 '엘벧엘'이라 불렀다.

 

 야곱이 벧엘에 도착하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야곱을 축복하신다.

 "네 이름이 야곱이지만, 이제 다시는 네 이름을 야곱이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다.

  자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많은 자녀를 낳아 큰 나라를 이루어라. 너는 많은 나라와 왕들의 조상이 될 것이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그곳에 돌기둥을 세워 기름을 붓고 제물을 드렸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또 '벧엘'이라 불렀다.

 

 벧엘에서 길을 떠난 야곱 일행이 베들레헴 근처에 이르렀을 때, 야곱의 두번째 부인 라헬이 아기를 낳다가 극심한 산통 끝에 죽었다.

 야곱은 라헬이 낳은 마지막 아들을 베냐민이라 불렀고, 그곳에도 돌기둥을 세웠다.

 야곱 일행은 베들레헴을 지나 에델 탑 많은 편에 장막을 치고 그곳에 정착하였다.

 

 하나님은 참으로 끝질기게도 야곱을 붙드시고 축복하시며 길을 인도하신다.

 돌아보면 야곱이 복을 받을 만한 합당한 이유가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야곱은 자신의 수단과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쟁취하려 하였고, 그 과정에서 속임수와 계략을 사용하여 '속이는 자'가 되었다.

 라반의 집에서도 역시 자신의 방법을 이용하여 재산을 축적하려 하였고, 에서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의 야곱의 모습 역시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가족들을 앞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야곱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복을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 밖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왜 이런 야곱을 선택하셨을까?

 

 이런 질문이 드는 순간, 그 야곱보다도 못한 내 모습이 보인다.

 내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합당한 이유가 있던가? 내가 야곱보다 나은 부분이 있던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 세우셨던 언약을 야곱을 통해 이루고 계셨다.

 불완전하고, 불의한 야곱이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복으로만 살고자 하는 야곱의 믿음을 보셨다.

 그리고 그런 야곱을 연단하시기 위해 20년을 라반의 집에서 보내게 하시고, 참으로 험악한 여정을 통해 결국 벧엘까지 이끄셨다.

 

 내가 해야할 일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살기 위해 애쓰는 것도 있지만,

 그에 앞서 하나님만이 내가 살아갈 길임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이 아닐까?

 

 행위보다 믿음을 강조하는 로마서와, 믿음의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서의 내용이 결국은 같음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하나님은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는 본질적으로 같다.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삶.

 이 행위와 믿음의 균형을 이루도록 오늘도 내 삶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맡기는 믿음이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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