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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QT)548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20)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또다시 예수님께로 와서 표적을 보여달라 청한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많은 이적을 행하셨고,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저는자가 걷고 눈먼자가 눈을 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늘에서부터 오는 어떤 증거를 보여달라 한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묻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의도를 아시고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말씀하신다. 이미 받아들이지 않기로 정해놓고서 표적을 구하니 악하고 음란한 세대인 것이다. 하늘의 색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면서 명백하게 보여지는 증거들에는 눈을 닫아버리니 예수님은 이들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다시 말씀하신다. 더이상의 논쟁이 의미 없음을 아신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건너편으로 이동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 2019. 2. 25.
믿음 (마 15:21~39)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지방을 지나실 때, 가나안 여자 한명이 큰 소리로 자신의 딸이 귀신이 들렸으니 살펴달라 외친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이 여인은 유대인이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예수님께 걸고 제발 좀 불쌍히 여겨 달라 외치지만 예수님은 들은척도 하지 않으신다.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의 뒤에서 소리친다. 제자들이 듣기에 다소 민망했었나보다. 아니 도대체 저 이방여인은 뭔데 들은척도 안하고 그냥 지나가면 그런줄 알 것이지 저렇게 소란을 떤담? 눈치가 없는거야? 아니면 미련한거야? 참다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 여자는 그냥 가라고 해야 갈 것 같다 말한다. 역시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말에 이스라엘을 위해 오신 것이라 말씀하시는데 그 틈에 여자는 예수님 앞까지 달려나와 엎드린다.. 2019. 2. 24.
정결함 (마 15:1~20) 복음서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과 논쟁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지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논쟁에서 한번도 예수님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것은 결국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부추기게 된 원인들 중 하나였다. 바리새인들은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선대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것을 중시했다. 이러한 습성은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것들을 도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면서 지나칠 만큼 선대의 생활양식을 따르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특히나 식사 전에 정결한 그릇에 받은 정결한 물에 손을 씻는 행위는 전통적으로 시장이나 길에서 더러워진 몸을 정결케 하는 의식 중 하나였다. 바리새인들은 이 규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을 뿐 아니라 그릇과 물 까지도 까다롭게 구분하여 사용했었다. 당시 가장 유.. 2019. 2. 23.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마 14:22~36)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에 태우시고는 모여든 사람들을 흩으신다.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예수님이 왕이라면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 생각했다. 요한복음 6장에서는 군중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긍휼때문에 군중들을 먹이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긍휼이나 천국의 복음보다는 당장의 끼니가 걱정이었고, 로마의 압제가 걱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처럼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을 억지로라도 왕으로 세우려 한 것이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모였지만, 예수님의 가르치심 때문에 모여들었지만, 그들의 관심은 복음이 아니라 왕이었다. 예배를 하고, 묵상을 하고, 찬양을 하지만 나의 관심이 하나님.. 2019. 2. 22.
긍휼-오병이어 (마 14:13~21) 세례요한의 죽음을 들으신 예수님.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있고자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배를 타고 "빈 들"로 가셨지만, 예수님은 이미 유명인이었다.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이 따라다녔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날이 저물때가 되자 제자들은 걱정이 되었다. 사람들은 많은데 먹을 것이 없으니 제자들은 예수님께 사람들로 하여금 인근 마을로 돌아가 저녁을 먹도록 하자는 제안을 한다. 그런데 돌아온 예수님의 대답은 황당하다. "그럴필요 없다. 그냥 너희들이 사람들에게 먹을것을 좀 줘라" 제자들은 당황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빵 5개와 생선 2마리 뿐이라고 말씀드린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먹기에도 빠듯한 양이다. 예수님은 음식을 가지고 축복기도를 하신 뒤 사람들에게 떼어서 나누어 주라 명.. 2019. 2. 21.
분봉왕 헤롯과 세례요한 (마 14:1~12)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유대지역을 다스리던 헤롯왕은 무려 여섯번 결혼하고 그 때문에 후계자 문제를 둘러싼 분쟁, 모함, 처형이 끊이지 않았다. 헤롯이 왕위를 물려주려던 맏아들을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 허락하에 재판을 통해 처형을 하고는 마지막 유언을 통해 헤롯 아르켈라오스에게 영토를 물려주고, 헤롯 안티파스에게 갈릴리 지역과 뵈레아 지역, 헤롯 빌립1세에게 골란과 베다니아를 각각 나누어 물려주었으나 황제의 허락을 받지 못해 결국 세 아들 모두 왕이 되지 못하고 '분봉왕'이 되었다. 헤롯 안티파스는 아버지였던 헤롯왕의 죽음을 틈타 일어난 오순절 반란을 진압하고 자신의 영토에 디베랴 등의 많은 도시를 건축하였다. 그는 나바테아의 공주 파샬리스와 결혼했지만, 그의 이복동생인 헤롯 빌립2세의 아내이면서 다른 이복동.. 2019. 2. 20.
천국 (마 13:44~58)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나는 다양한 천국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 첫번째로는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고, 이어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오늘 본문에서는 밭에 감추인 보화,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 고기잡는 그물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천국에 관한 비유를 듣고있노라면, 예수님이 설명하는 천국과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이 약간 차이가 있는 듯 싶다. 예수님이 설명하고 계시는 천국은 하나님이 계시고 다스리시는 하늘나라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복음, 말씀에 더 근접한 듯 싶다. 어떤 사람이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고는 도로 묻어두고는 돌아가 자신의 전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산다. 아마도 그 보화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행동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 2019. 2. 19.
겨자씨와 누룩 (마 13:31~43) 예수님은 천국의 비유로 겨자씨 한알을 말씀하셨다. 겨자는 매우 작은 씨앗이지만, 그것이 자라면 풀보다 큰 나무가 되고 새들이 둥지를 튼다. 겨자는 풀이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보이는 유채와 비슷하다. 그런데 갈릴리 지방이나 이스라엘 지역에서 자라는 겨자는 조금 다르다. 풀도 있고, 나무도 있다. 풀은 무성하게 자라면 키가 2~3미터 정도까지 자라고, 나무로 맺는 겨자도 있다. △ 겨자풀이 자라 덩쿨을 이룬 모습 △ 이스라엘의 겨자나무 사실 겨자나무인지, 풀인지가 중요하지는 않다. 유대인들은 꽃대궁이 올라오는 식물은 모두 나무라고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예수님이 겨자나무를 이야기 하신 것인지, 아니면 풀을 이야기 하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의 요지는 분명하다. 작은 겨자씨 하나이.. 2019. 2. 18.
곡식과 가라지 (마 13:18~30) 네가지 밭의 비유(씨뿌리는 자의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씨뿌리는자의 비유를 풀어주신다. 예수님이 이렇게 제자들에게 비유를 풀어서 설명해 주시고, 그 내용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비유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해석 과정에서 불필요한 의미들이 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씨뿌리는자의 비유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형태에 대한 비유라고 설명하셨다.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길가와 자심 기쁨으로 받지만 어려움이 닥치면 넘어지는 돌밭, 그리고 염려와 재물의 유혹때문에 열매맺지 못하는 가시밭, 듣고 깨닫는 좋은 밭이라고 설명하시면서 다른 해석을 덧붙이지는 않으셨다. 말씀을 대할 때 나는 습관적으로 어떤 다른 의미가 있지는 않은가 탐구하고 찾아보.. 2019. 2. 17.
씨뿌리는자의 비유 (마 13:1~17) 씨뿌리는 비유는 마가복음 4장과 누가복음 8장, 그리고 마태복음 13장에 걸쳐 나타나는 비유이다. 예수님은 종종 비유로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 이유에 대해 제자들이 묻자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니 귀 있는자가 듣고 눈 있는자가 보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하신다. 씨뿌리는 비유는 간단한 비유이다. 길가에, 돌밭에, 가시밭에, 좋은 땅에 씨를 뿌렸더니 좋은 땅에 뿌리워진 씨가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것.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다. 제자들이 이 비유에 대해 묻자 다행스럽게도 마가복음, 누가복음, 마태복음 모두 예수님이 이 비유를 풀어 설명하신것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 13장 마가복음 4장 누가복음 8장 길가 듣고 깨닫지 못함 받아들이지 못함 받아들이지 못함 돌밭 시련에 넘.. 2019. 2. 16.
표적 (마 12:38~50)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짐짓 예수님을 띄워주는 척 하며 표적을 보여달라 요청한다. 정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면 무언가 특별한 표적을 행할 수 있을 것 아니냐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회개를 촉구했는데 이들은 회개가 아닌 특별한 표적을 원했다. 이에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 말씀하신다. 심판날에는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서 이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라 말한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가 마지못해 전하는 선포에도 회개함으로 멸망을 피했는데 그 요나보다도 크고 솔로몬 보다 큰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는데 전혀 회개하지 않는 강팍한 마음을 꼬집으신 것이다. 사실 바리새인들의 요구는 다소 황당하다. 특별한 기적을 보여주었다면 그들은 믿고 회개하였을까? 예수님은 이미 귀신을 쫓아내고, 눈먼자를 보게하고,.. 2019. 2. 15.
나무는 열매로 안다 (마 12:31~37)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타가 이어진다. 예수님은 병든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에 대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얻었다 말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을 거역하거나, 신성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거역하고 모욕하는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 경고하신다. 예수님의 권능은 성령을 힘 입어 하시는 것이고, 그 권능을 거역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어 예수님은 나무가 좋으면 열매가 좋고, 나무가 나쁘면 열매가 나쁜 법이니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알 수 있다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역할수는 있지만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거역할수는 없다는 것이다. 귀신의 힘을 빌려 이적을 행한다면 귀신에게 이로운 일을 하겠지만, 드러.. 2019. 2. 14.
눈을 닫고, 귀를 닫고 (마 12:22~30) 명절에 불편한 점을 꼽으라면 정치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어머니는 북한에다 다 퍼주면 우리는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며 나라 망쳐먹고 있다고 하신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어머니를 설득해 보려 했으나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아무리 이야기 해 봤자 귀를 닫고 말하는 사람하고 무슨 말을 하랴.... 차례상을 차릴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아무리 명절 차례상에 밥과 국은 올리는게 아니다. 이거는 여기에 올리는거다 해 봤자. 어머니는 결국 어머니 하고 싶은신대로 한다. 그러면서도 차례상에 음식을 올려놓는 일은 나의 몫이다. ㅡ,.ㅡ 내가 제일 잘 알기는 하지만 그것 외에 어머니는 양보가 없으시다. 유튜브에서 태극기집회에 나와있는 어른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역시나 논리적으로 말하려고 .. 2019. 2. 13.
섬김의 메시아 (마 12:14~21) 예수님과 율법으로 논쟁하던 바리새인들은 더이상 말로 어찌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논쟁을 하지 않고 안식일을 범한 것을 빌미로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지를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은 그들과 더이상 다투지 않으시고 그 자리를 떠나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움직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내치거나 물리지 않으셨다. 바리새인들의 살해의도를 피하시기 위해 자리를 옮기신 것이라면 사람들도 물리고 조용히 은거하셨겠으나 예수님이 자리를 옮기신 이유는 다투지 않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마태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설명하고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을 보아라. 내가 선택한 사람, 내가 기뻐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내 영을 주었으니 그가 모든 민족에게 정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크게 소리치.. 2019. 2. 12.
안식일 (마 12:1~13)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이삭을 잘라 먹었다. 바리새인들이 이를 보고 제자들이 안식일을 어겼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며 시비를 걸었다. 이에 예수님은 다윗이 수하들과 함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렀을 때에 제사장들에게만 허용된 진설병 먹을 일화(삼상 21:1~6)를 들어 이것이 죄가 되지 않음을 말씀하신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모세와 다윗의 행적에 대해서는 신성시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다윗의 행적을 예로 들어 예수님은 안식일이라 할 지라도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반박하셨다. 두번째 안식일의 문제는 병든자를 고치는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예수님은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져 있다면 구해내지 않겠느냐 질문을 던지신다. 하.. 2019.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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